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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7년
3월호

윤리연구소 - 보고서 리뷰

재벌총수일가의 경영권세습과 전문가인식 분석



경영권을 왕좌로 표현한 그림

2008년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채 십년이 되기 전 그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돼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 부회장의 구속은 재벌지배구조의 취약성과 경영권 승계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국민들이 듣는 재벌관련 소식은 주로 분식회계나 비자금 관련 내용,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이나 유산상속 등의 송사, 재벌들의 갑질 행패 등 그 내용이 다양하며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 못할 부분도 있다. 전문가 및 국민 모두가 재벌의 구속이나 사면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재벌의 잘못된 판단과 부정한 사익추구 행위가 우리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펴낸 「재벌총수일가의 경영권세습과 2015년 전문가인식도 분석」(위평량 저, 경제개혁리포트 2015-04) 보고서는 한국 재벌그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영(권)세습의 일반적인 의미와 재벌3~4세의 경영세습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분석하고 있다. 즉, 재벌의 부와 경영권의 세습과정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세습경영인의 개인적인 경영능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지 등을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살펴본 보고서이다.

분석대상과 분석방법

2016년 공정거래위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기준을 자산규모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상향조정하여 대기업집단이 65개에서 28개로 줄어들었다. 보고서는 2014년 기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63개 중 총수가 있는 40개 기업에서 임원으로 5년 이상 근무한 재벌총수 자제 11인을 대상으로 50명의 평가전문가집단(대학교수 18명, 주요 민간 연구소 전문가 12명, 자본시장 펀드매니저 11명, 증권분석가 9명)이 설문에 응답한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24개의 설문항목은 일반론(8개), 소유권승계과정(2개), 경영능력(13개) 및 도덕성(1개) 등이다.

경영세습을 둘러싼 쟁점들

재벌그룹의 경영세습은 △선대에 축적된 재산을 상속받는 부의 대물림이 있고, △그룹계열사 전반에 대해 막강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지분을 상속받아 실체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세법에 합당한 세금을 납부하면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하지만 법망을 피해 여러 편법적인 증여나 상속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민적인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이 항상 문제가 되는 우리의 기업현실에서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기업자원을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기업으로 이전시키는 부당내부거래, 즉 터널링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 재벌기업이 계열사들을 동원해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어 총수집안의 재산을 편법적으로 증식시키고 총수 자제로의 경영승계를 편법적으로 도울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금융제도,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낮은 수준의 부패, 최고 수준의 회계기준 및 사법기준, 철저한 납세준수가 필요하다.

주식지분상속으로 경영권을 세습할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세습당사자의 경영능력이다. 무능한 경영인은 자신뿐 아니라 선의의 투자자와 근로자 그리고 공급망이나 유통망 등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특히 대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현실은 세습경영인의 능력문제가 우리 경제시스템을 위협하는 불안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을 요구한다. 가족기업의 성공 사례인 월마트나 BMW의 경우 소유권을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고 기껏해야 이사회의 비집행이사, 감독이사회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월마트는 철저한 CEO 승계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한 기간을 두고 후보군을 선발하여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게 함으로써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역량을 키운다. 가족기업의 경우 가족 구성원을 경영에서 배제하는 것도 역차별 논란이 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내부 경영승계에 대한 합리적인 프로그램을 갖추고 모든 능력 있는 후보자들이 상호경쟁을 통해 검증된 인물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일 것이다.

재벌승계에 관한 일반론 분석

①전문가 집단은 경영권이 총수자녀에게 승계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56.0%)이 바람직하다는 응답(14.0%)보다 4배나 높게 나타날 정도로 부정적 시각이 압도적이다.
②총수자녀의 경영권 승계가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전문가들이 58.0%에 이른 반면,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전문가들은 6.0%에 불과하다. 10배 가까운 전문가들이 부정적 평가를 하는 것으로 보아 자녀의 경영권 승계가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③자녀의 경영권 승계의 문제점에 대한 질문에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36.67%), 불법편법상속(30.83%), 경쟁 없는 승계(19.17%), 그리고 승계 과정의 불투명성(13.3%) 순으로 높은 응답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자녀의 경영권승계에 관해 특별히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못한 점 그리고 부의 불법적인 상속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④경영권의 자녀승계에 따른 장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경영권 안정에 기여한다(47.17%), 해당기업의 예측가능성에 도움을 준다(39.62%), 충분한 경영수업(9.43%), 과당경쟁 해소(3.77%) 순으로 응답률을 보인다.
⑤소유권 승계과정 중에 발생한 문제가 향후 경영권 승계의 정당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90%)는 응답이 거의 대부분이다.
⑥총수일가 개인이 저지른 위법행위(횡령, 배임 등)가 그룹 경영권 승계 여부를 결정하는데 얼마나 중요하냐는 질문에 중요하다(86%)는 응답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⑦총수일가 개인의 도덕성(횡령·배임 등 경제사건 제외한 기타 범죄경력 등)이 그룹의 경영권 승계 여부를 결정하는데 얼마나 중요하냐는 질문에 중요하다(73.5%)는 응답이 매우 높다.
⑧경영권 승계를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을 묻는 질문에 경영능력(47.27%), 소유권 승계과정의 적법성(31.27%), 승계자의 도덕성(21.47%) 순으로 응답한다.

전문가그룹이 내린 평가는 △자녀의 경영권승계가 바람직하지 않고 △자녀의 경영권승계가 기업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경영능력 부재와 불법·편법적인 부의 상속이 경영권승계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소유권 승계과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향후 경영권 승계의 정당성을 훼손시킬 수 있고, 총수일가 개인이 저지른 경제사건(횡령, 배임 등)이 그룹의 경영권 승계 여부를 결정하는데 중요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총수일가 개인의 도덕성이 그룹의 경영권 승계 여부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며, △경영권 승계를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경영능력과 소유권 승계과정의 적법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대상자 개인별 평가분석

후계자들의 개인적인 경영능력 평가는 100점 척도로 평균 35.79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전문가들은 경영후계자들에 대해 낙제점을 줄 정도로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승계과정에 관한 설문인 ‘승진기간,’ ‘경영능력 검증,’ ‘후계자 선정과정에서의 경쟁,’ ‘승계과정의 투명성’에서 평균적으로 10점 만점에 2.42점~2.58점으로 매우 낮은 점수가 부여됐다. 반면, 임원재직 중의 독자적인 경영판단 및 조직 장악력에 대한 문항은 4.23점~4.27점으로 평가되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평가대상 경영인들은 여전히 그들의 앞 세대가 현직(회장)에서 그룹 경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다음으로는 ‘충분한 경영수업과 그룹을 이끌어갈 자질과 전문성(3.46점),’ ‘비전과 전략에 대한 내·외부 소통(3.24점),’ ‘고용·복지 및 노조 등에 대한 시각’(3.30점) 부문에서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노동력 등 인적자본의 중요성이 날로 커가는 추세와도 동떨어진 결과여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향후 회사발전 가능성 평가와 경영실적에 대한 기여도 등에는 3.53점~3.68점을 부여 받았다.

조사대상자의 임원승진 시점 및 직위 등이 결정되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지배주주 또는 회장의 판단’이 무려 92.73%의 비중을 차지해 압도적으로 중요한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나이’, ‘경영능력’, ‘경영수업연수’는 각각 5.89%, 4.58%, 3.59%로 나타나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재벌그룹 후계자들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후계육성 프로그램에 의해 선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중에 알려진 바와 같이 재벌그룹 총수의 판단이 중요한 기준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 셈이다.

경영권세습이 주는 시사점

스웨덴 경제의 3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 그룹,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 덴마크 기업들인 머스크(해운), 레고(완구), 칼스버그(맥주), 노보 노르디스크(제약) 등의 북유럽 가족기업들은 오랫동안 기업이 장수할 수 있는 지배구조와 시스템을 발전시켜 창업자가 설립한 재단이 최대 주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 최대 운송/에너지 기업 AP 묄러머스크의 경우 묄러 가족재단이 의결권의 60% 이상을 갖고 있다. 창업자 개인지분을 대부분 재단에 귀속시켜 가문의 공동재산으로 관리하면 후계자들의 지분 싸움을 방지할 수 있고 기업이 다른 기업에 넘어가지 않도록 견고한 방어벽을 쌓는 효과가 있다.

유럽 가족기업의 경우 엄격한 후계자 선발 시스템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부모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나오고, 세계 시장의 다른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역량을 입증하는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후보자가 된다. 가족이라고 무조건 경영인의 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도 이러한 기업승계 문화를 빨리 정착시켜 재벌의 세습경영 때문에 국민들이 반기업정서를 표출하는 일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은 투명경영과 준법경영이 필요하고, 승계과정에서 세법이 요구하는 절차적 정당성이 반드시 요구되며, 마지막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모두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참고자료
  • “재벌총수일가의 경영권세습과 2015년 전문가인식도 분석” (위평량 저, 경제개혁연구소. 2015.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