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사회적기업과 기업윤리
“인간은 비록 이기적일지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애덤 스미스『도덕감정론』중에서.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윤리철학자로서 『도덕감정론』의 저자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손’은 자신의 이익만 꾀하는 비정한 사회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시민사회에서 온전히 기능하는 시장원리인 것이다. 실제로 대공황, 양극화, 금융위기 등의 시장실패를 거쳐 오늘날의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중에는 경영활동에 대한 법적, 윤리적 책임을 지고 이를 경영활동 전반에 반영하는 기업윤리 준수가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상당수의 기업들은 고령화, 기술 소외, 난민 같은 사회문제 해결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당장의 법적 책임은 없을 지라도 향후 영업활동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업윤리와 사회윤리가 겹치는 영역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영리활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은 이러한 교집합 속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번 사례돋보기에서는 국내 사회적기업 관련 동향을 크게 ① 사회적기업(소셜벤처)의 확산, ② 영리기업들의 사회적기업 지원 및 육성, 그리고 ③ 사내 사회적기업 육성으로 분류하고, 분야별로 대표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01. 사회적기업(소셜벤처)1)의 확산
샘플이미지 사회적기업은 윤리적 소비행태의 확산과 미닝아웃(meaning-out)이라는 트랜드 속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으로 마리몬드와 위누가 있다.
2012년 설립된 마리몬드는 인권을 위해 행동하고 폭력에 반대한다는 철학을 가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폰케이스, 잡화, 의류, 문구 등의 디자인 상품을 판매한다.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꽃할머니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업이다. 영업이익의 50%를 기부하는 마리몬드의 2019년 7월 누적 기부금은 22억 2800여만 원에 이른다. 마리몬드는 그 설립 취지에 동의하는 많은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홍보하고 구매하면서 높은 매출과 수익을 달성하며, 사회적기업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2007년 설립된 위누는 대중과 작가를 이어주는 문화예술 소셜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이다. 거대자본이 투입되는 대형 전시회나 상업예술들만 양산된다면 가능성 있는 신인 작가들을 길러내기 어렵다. 위누는 예술가들이 일거리를 갖고 대중에게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1000여 명에 달하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교육 프로그램 및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해왔다. 우리 사회의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과 신진 양성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나라는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라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아야만 정식으로 ‘사회적기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으며, 여러 지원혜택의 요건을 갖게 된다. 이 같은 인증을 받지 않았지만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는 곳들을 소셜벤처로 칭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비영리·복지 방식이 아닌 영리·기업 방식을 통해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인증제도가 없는 해외의 경우, 모두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으로 통일한다. 일각에서는 소셜벤처는 새로운 사업 분야의 개척과 혁신적 아이디어의 상업화 등을 사회적기업보다 강조하는 특징을 지닌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02. 영리기업들의 사회적기업 지원 및 육성
샘플이미지 (예비)사회적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영리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혹은 지속가능경영의 일환인 셈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사회공헌사업 H-온드림이 있다.
H-온드림은 사회문제의 혁신적, 창의적 해결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사회적기업가의 발굴과 육성을 통해 청년들의 새로운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 목적을 둔 사회사업이다. 업종별 예선과 전국 본선을 거쳐 오디션을 통해 발굴된 입상팀에게는 재정 및 경영지원을 제공한다. 금전적 혜택을 넘어 추가 자본 조달이 가능한 신용 대부 연계, 동종 업계 선배의 멘토링, 시장 조성을 위한 기회 및 역량 전수까지 약속한다. 전문경영컨설팅이 패키지로 주어지는 셈이다.
주최는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자 정몽구 재단이지만 씨즈, 한국메세나협회, 사회적기업윤성기관협의회 같은 시민사회가 주관하고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등이 후원한다는 점에서 유기적인 민관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H-온드림은 2012년부터 211개의 사회적기업을 육성해 총 142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성과를 인정받아 UN 사회연대경제 콘퍼런스에서 정부, 시민사회, 공공기관 등 다자간 협력의 중요성을 전파하기도 했다.
03. 사내 사회적기업 육성
샘플이미지 기업이 자체적으로 사내 사회적기업을 육성하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럽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수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직 내부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고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SK하이닉스의 하이게러지(HiGarage) 프로그램이 있다.
하이게러지는 실현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우수한 아이디어에 회사 차원에서 창업 기회를 부여하는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다. 사내외 전문가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된 임직원은 기존 업무에서 벗어난 별도의 조직과 공간에서 벤처 사업화를 준비하게 되며 이후 최대 2년 동안 창업 전문가들의 컨설팅 등 과정을 거쳐 창업 혹은 SK하이닉스 사내 사업화를 선택하게 된다. 전담 조직에게는 근무시간 자율제와 절대평가 기준 인사평가 실시로 창업에 집중할 수 있는 업무환경이 주어지며, 창업에 나설 경우 창업 장려금 또는 지분 투자 형태로 SK하이닉스가 자금 지원을 한다. 일정 기간 내 사업에 실패할 경우 재입사도 보장한다. 사내 사업화를 택할 경우 이익 일부를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배분할 계획이다. 지난해 8월 공모를 시작한 하이게러지에는 약 240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하이닉스는 실현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 창출 수준을 고려해 6건의 아이디어를 최종 육성하기로 결정하고, 총 12억 원의 자금을 사업화 과정에 지원하기로 했다. 주요 선발 사례로는 국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외국산 전문장비의 국산화 및 인공지능을 접목하여 반도체 공정의 개발효율을 높이는 알고리즘 개발사업 등이 있다.
사회적 가치, 경제적 가치를 견인하다
이처럼 기업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기업을 세우고 육성하고 있다. 잠재적 소비자들인 대중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영리기업으로서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하다 보면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폐기되기 마련이다. 이때 사회적기업은 기업의 혁신성과 창조역량을 자극하는 아웃사이더 역할을 해 준다. 현재 연매출 100억 원의 기업으로 성장한 마리몬느의 시작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고자 하는 선의가 있었다. 재무적 이득이라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공공선과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볼 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회적기업과 영리기업의 경계는 계속해서 흐려지고 있다. 경제적 가치만큼이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는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시기다.
* 자세한 참고 문헌 리스트는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내 한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