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코칭
윤리경영을 넘어 가치경영으로
이 재 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Q1. 국내 기업의 사업영역이 넓어지고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부패와 같은 윤리적 리스크 관리를 넘어서야 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도적 환경에서 특별히 개선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기업의 윤리적 리스크는 제도적 환경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한국이 고도성장을 이루었던 권위주의 시대에는 투명성은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패가 심각한 제3세계 국가들과 비교해 유독 한국만이 고도성장을 한 비결이 무엇인지가 국제적인 궁금증의 대상이었습니다. 급성장하는 경제에 비해 뒤처진 제도 속에 성행한 ‘급행료’는 제도 공백이나 지체의 갭을 메우는 윤활유 역할을 했고, 낮은 처우를 받는 공무원에게 서비스가 급한 이들은 급행료를 제공하고 빠른 행정서비스를 제공받는 등 행정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높였다는 것이 기능주의적 설명입니다.

주로 규제자가 자원을 사유화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아프리카의 후진국형 부패나, 친인척을 등용해 공기업을 관리하는 러시아의 족벌형 부패와는 구별되는 순기능의 측면도 있었다는 너그러운 해석입니다. 고도성장을 한 중국이나 신흥시장에서는 여전히 관찰되는 현실입니다.

오늘날의 경우 부패로 연결될 수 있는 카르텔화의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정치권과 고위공무원, 판검사라고 생각합니다. 1인당 영향력을 의사와 비교해 추정해본 결과 고위 공무원은 의사의 약 5배, 국회의원은 의사의 약 50배에 이릅니다. 판검사의 영향력도 이들 못지않게 막강합니다. 막강한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반부패 정책은 서구 계약주의 사회에서보다 훨씬 강한 과감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강력한 반부패 정책을 펼쳤던 싱가포르와 홍콩의 반부패 성공모델은 한국에 주는 함의가 큽니다. 강한 의지 없이는 우리 경제수준에 걸맞게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없으며, 투명성 제고 없이는 더 이상의 국가경쟁력 향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현재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양적 투입이 아니라, 제도의 질적 수준입니다. 과학기술 투자, 대학 진학률, 인프라 투자 등은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규제의 일관성과 투명성, 노사관계 관련 제도, 금융산업의 품질, 교육의 수준 등 질적인 측면은 그에 비해 부족해 보입니다.

Q2.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존경받는 기업들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들은 모두 기업시민으로서 준법정신을 발휘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경제적 성과는 떨어지나 사회적 책임을 잘 감당하면 ‘착해 빠진 기업’, 이윤을 많이 남기지만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면 ‘얄미운 기업’,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 둘 다 충족하지 못하면 ‘멍청한 기업’, 재무적 성과를 내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 ‘똑똑하고 존경받는 기업’입니다.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사회적 가치를 녹여 중요한 성과지표로 관리해야 존경받는 기업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업이 이해관계자들과 ‘공유가치’를 키워야 장기적으로 기업도 성장하고, 사회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간 도외시됐던 수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생산성의 기준과 범위를 다시 정의함으로써 지역이나 협력사 클러스터의 생태계가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초연결 사회가 낳은 기업 환경 변화는 ‘얄미운 기업’이 돌발적인 윤리적 리스크에 처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반대로 기업 성과를 오랜 시간 추적 조사한 연구들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 기업들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성장률이 높았음을 보여줍니다. 똑똑하고 존경받는 기업은 이윤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관심과 행복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글로벌하게 보면 기업 평가 모델도 바뀌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재무적 가치 위주로 정의하던 기업의 성공을 환경, 비즈니스 모델, 지역사회, 거버넌스, 기업 구성원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력 등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고, 비콥(B-corp) 인증1)은 그 표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SG경영은 사회적 가치나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투자자와 소비자의 변화된 가치가 기업에게 본격적으로 글로벌한 전략 기준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는 ‘의식있는 자본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가치경영이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빌 게이츠는 2007년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연설하면서 졸업생들에게 자본주의의 양대 축인 시장과 기술혁신을 활용해 가난과 질병으로 인한 인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변화의 시대, 인류 불평등 문제 해결과 같이 이윤극대화를 뛰어넘는 ‘메타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은 기업의 정당성을 높이는 길입니다. 그렇게 해야 기업 구성원에게 내적인 동기를 부여할 수 있고, 이해당사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창조적 자본주의’를 통해 세상은 더 살 만해질 것입니다.

  • 비콥(B-corp) 인증 : 미국 록펠러 재단이 출자한 비영리 단체 비랩(B Lab)에서 기업의 사회·환경적 성과와 투명성 등을 전반적으로 측정 · 검증하여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에 인증 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