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살의 청년은 전동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다. 정해진 안전수칙은 2인 1조로 근무하는 것이었지만, 협력사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최저 입찰가로 서울메트로와 계약을 따낸 협력사는 인건비 절감을 통해 경영효율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서울시장 및 서울메트로는 엄청난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서울메트로는 간부급 인사 총 180여 명에게 사표를 받아두고 혁신안 마련에 소극적일 시 이를 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안전수칙을 어긴 것은 협력사였지만 여론은 서울메트로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일감을 발주한 기업이 협력사 네트워크 전반을 감독할 것을 요구한다.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기업이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지라는 것이다. 비윤리적인 산업재해와 환경오염 등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협력사 네트워크 전반에 자사의 윤리 규범을 확산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장려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이번 사례돋보기에서는 공급망 리스크 관리를 위해 시스템을 수립하고 실천하고 있으며, 크게 1) 협력사 행동규범 제정, 2) 이행 수준 평가, 3) 현지 근로자 교육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의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협력사 행동규범 제정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ABS, 편광판 등을 생산하는 글로벌 제조업체다. 부품 및 원자재를 공급받는 협력사 또한 전 세계에 걸쳐있다. LG화학은 원재료의 안정적인 수급과 윤리적 구매를 위해 2016년 협력사 행동규범을 제정했다. 인권, 노동, 윤리경영, 안전환경 등 10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협력사 행동규범은 LG화학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공급망 관리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7년에는 비윤리적인 방법을 통해 취득된 원자재 사용을 금지했다. LG화학이 분쟁지역의 광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정책의 일환이다. 분쟁지역에서 특정 세력이 민간인들을 강제로 동원해 광물을 채굴하거나 광물의 판매 수익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분쟁광물의 사용 여부를 회계보고서를 통해 증권거래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법안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LG화학의 협력사 행동규범은 공급망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협력사의 사회적 책임 LG전자는 가전제품, 가전제품, 음향기기, 핸드폰 등을 생산하는 글로벌 제조업체다. LG전자는 구매센터를 중심으로 협력사들의 윤리 규정 준수를 감독하고 있다. 거래금액의 상위 80%를 차지하는 주요 협력사들은 LG전자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측정 도구를 활용해 CSR 이행 수준을 평가한다. CSR 실천이 미진한 협력사에는 거래 중단 같은 불이익이 아니라 개선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고 전문 인력을 파견한다. 협력사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비윤리적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공급망 리스크 관리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현지 근로자 윤리 강령 교육 한솔섬유는 전 세계 7개국에 해외법인을 두고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의 아시아 지역과 과테말라, 니카라과의 중미 지역에서 글로벌 생산기지를 운영하는 의류 OEM(주문자위탁생산) 업체다. 한솔섬유는 글로벌 공급망의 CSR 리스크 관리를 위해 1년에 2회 해외의 자사 공장과 협력사를 방문한다. 한솔의 윤리 강령과 지역 노동법을 준수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CSR 정책에 대한 전사적인 이해도를 고취하기 위해 현지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 또한 실시하고 있다. 더불어 CSR팀을 파견해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긴밀하게 본사와 소통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현지 법인이 위치한 현지 학교에 교육 관련 물품을 제공하고, 장학금을 지원하며 학업을 마친 학생들은 현지 법인에 취업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처럼 한솔섬유는 다양한 현장 점검 접근을 통해 현지 법인 및 협력사에 자사의 윤리 강령을 교육, 전파함으로써 비윤리적인 노동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협력사 리스크 관리는 어려워진다. 협력사의 숫자도 많을뿐더러 현지의 노동법과 근로환경, 지역 문화까지도 파악해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우수기업들일지라도 협력사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며 심각하게는 주가 추락과 투자자들의 개선 대책 촉구로도 이어질 수 있다.
주식 폭락을 가져온 협력사 아동 노동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경종을 울리는 대표적인 사례로 나이키가 있다. 1996년 <라이프>라는 잡지에는 한 소년의 사진이 실렸다. 수제 축구공 생산지로 유명한 파키스탄의 열두 살짜리 아동이 나이키의 축구공을 만들고 있는 장면이었다. 소년은 공 하나를 만들기 위해 5각형 가죽 조각 12개와 6각형 가죽 조각 20개를 무려 1620번이나 바느질해야 했다. 소년이 받는 돈은 공 하나당 고작 100원에서 150원. 최소한 수만 원에 팔려나갈 축구공의 가격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였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되어야 할 축구공이 오히려 아동착취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은 미국과 전 유럽을 뒤흔들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나이키는 “우리가 아니라 파키스탄의 협력사가 아동에게 노동을 시킨 것”이라며 발을 빼려 했고, 이에 미국의 시민단체들은 나이키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나이키의 매출은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절반으로 떨어졌고 주가도 37%가 폭락했다. 결국 나이키는 전 세계 공장에 소방시설과 비상구 등 안전시설을 갖추는 작업환경 개선에 나섰고 아동노동 금지 규정을 선포했다.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 협력사의 열악한 노동환경
애플은 미국 증시 시가총액 1위에 빛나는 IT업체다. 올해 1월 애플의 주력상품인 아이폰의 최대 생산기지인 대만 폭스콘 공장에서 근로자 한 명이 자살했다.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0년에는 무려 18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그중 14명이 사망했다. 비인간적인 고강도 노동환경 때문이다.
폭스콘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단순 반복 작업을 한다. 노동자 한 명이 하루 1700개의 아이폰을 조립해야 한다. 아이폰의 시장 수요에 맞추기 위해서 생산량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실수하거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동료들 앞에서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관리인의 허락 없이는 대화도 할 수 없고 화장실에 갈 때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현재 8명이 좁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며 전기세, 수도세까지도 부담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폭스콘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지적했고 많은 산업 전문가들이 이에 동조하여 소비자들에게 애플 불매운동을 제시했다. 여론의 악화를 우려한 애플의 기관투자자들은 협력사 직원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공급망 환경 개선을 요청했다. 2014년 애플의 주총에서는 기관투자자들이 지분을 모아 기업 내 인권정책을 검토하는 인권위원회 설치를 주주제안 형식으로 상정하기도 했다.
공급망 리스크 관리는 지속가능경영의 선결 조건
폭스콘 노동자들의 월급은 약 400달러(약 45만원)다. 한 달 동안 일해도 아이폰 한 대를 살 수 없다. 서울메트로에서 용역업체로 옮겨간 공기업 출신의 전적자들은 손쉬운 일만 맡으면서도 400만 원 가량의 고임금을 받았다. 반면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시간에 쫓기며 일했던 비정규직 스크린도어 수리공의 월급은 144만 원이었다.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해도 소비자이자 대중은 이러한 상황이 무언가 잘못됐다며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오늘날의 온라인 환경에서 소비자 여론은 불매운동을 확산시킬 수 있으며 정부에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정부는 각종 규제로 기업의 경영활동에 제제를 가할 수 있다. 공급망 내 협력사의 비윤리적인 생산 공정을 방치한다면 이를 방조했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