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최신 동향은 IT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경제의 원동력은 여전히 제조업에 있다. 그리고 제조 분야 대기업 생산량의 60~70%는 중소기업들로 구성된 공급망으로부터 나온다. 공급망의 수준이 곧 대기업의 수준이 된 셈이다.
최근 소비자 여론은 공급망 관리의 범위를 물량 공급이나 품질 유지 등의 생산관리 차원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의 관리·감독이 없다면, 사실상 대기업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국내외 중소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자본과 정보력 등을 이유로 환경보호, 노동법 준수, 업무환경 개선 같은 사안에서 단기적 재무성과 위주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조가 확산되면 환경오염, 실업, 독과점, 산업재해, 아동 착취 등 공동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퍼질 수 있다. 사회가 흔들리면 기업의 지속가능성도 담보할 수 없다. 결국 공급망 CSR 관리는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기업의 필수 경영활동인 것이다.
국내외 많은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KT의 경우, 2012년에 협력사 지속가능경영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 2017년에는 이를 개정·재배포했다.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하고 지속가능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자 함이다. 이번 인사이트+에서는 KT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공급망 관리 전략 및 지속가능성 구축과 관련해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팁을 제공하고자 한다.
협력사 지속가능경영 수행 기준은 KT에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전 세계 협력사와 하도급 협력사를 대상으로 하며 1) 사업 수행 원칙, 2) 환경 경영, 3)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역할, 4) 제품의 지속가능성 등 네 가지 측면을 고려하고 있다.
첫째, 사업 수행 원칙 항목에서는 기업의 지배구조, 윤리경영, 지속가능경영, 하도급업체 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KT는 협력사에 이와 관련된 모든 법률과 규정을 준수하고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모범 사례를 실천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을 어기거나 가격담합, 부정부패 같은 중대한 협력사 윤리 규정을 위반할 시에는 KT와의 거래가 중단될 수도 있음을 적시했다. 외부의 이해관계자와 직접 소통하는 구매, 영업 담당자를 위한 윤리적 행동지침을 명문화하고 반부패를 위한 내부 제보 시스템의 도입도 권장하고 있다. 또한 KT는 협력사에 윤리적 구매를 확인하기 위한 증빙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망간, 게르마늄, 탄탈룸 등은 분쟁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문제는 해당 지역의 특정 세력이 민간인들을 착취해 이 광물들을 채굴하고 있는 것이다. KT는 이러한 제품(분쟁광물)을 구매하지 말 것을 협력사에도 요구하고 있다.
둘째, 환경경영 항목에서는 기후변화와 물 부족 등 인류의 영속성에 위협이 되는 행위를 지양하고 환경 보전에 기여할 방안들을 제공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환경보호를 비재무적 측면이 아니라 비용 문제, 즉 재무적 측면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천연자원은 유한한데 글로벌 시장은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다면,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향후 중요한 기업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를 위해 KT는 환경 법규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환경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한 협력사와는 거래가 중단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수집·보고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외에도 독성 화학물질 사용을 지양하고, 수자원 보호를 위해 물 사용량과 폐수 오염도를 측정, 관리할 것을 권장하며, 재활용을 위한 폐기물 분리 설비를 운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셋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역할 측면에서는 인권, 근로 기준, 노동권 등을 준수, 기업의 명성 리스크를 낮추고 내부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KT는 근로계약, 노동권, 공정한 보상 등 노동 관련 법규를 준수해야 하며 이와 같은 노동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협력사와 거래를 중단할 수 있음을 알리고 있다. 또한 KT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아동 노동 금지, 차별 금지, 비자발적 근로를 금지하는 등 인권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안전경영시스템에 대한 외부인증을 받을 것을 권장하며 정기적으로 안전교육과 안전평가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등 산업안전에 대한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
넷째, 제품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환경보호를 위해 협력사들이 제공하는 제품 및 장비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지속가능성 효율을 평가하고 있다. KT에 납품되는 물품 및 장비는 직원과 고객, KT가 관리하는 인프라와 그 인근의 안전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공인기관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KT는 환경 영향을 낮추기 위해 협력사가 자사 제품의 생애주기를 분석, 자재 및 자원 효율성을 향상시켜 비용을 절감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제품을 디자인하는 시점부터 분해 및 재활용을 고려할 것을 권고한다. 수명이 끝난 제품은 협력사가 KT로부터 회수해 가는 폐기제품 회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것도 권장하고 있다.
KT는 정기적으로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지속가능성 평가 설문을 시행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으로 제공한 공급망 지속가능경영 추진 기본 원칙을 협력사들이 잘 실천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평가 설문 결과는 분석 과정을 거쳐 협력사별 지속가능성 점수로 환산된다. 이렇게 산출된 점수는 입찰 및 연간 평가 시 협력사 경영 역량을 평가하는 주요 항목으로 통합되어 활용되고 있다. 협력사 평가에 지속가능경영 성과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될 예정이다. KT는 지속가능경영의 실질적인 실천을 위해 협력사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 설문이 요청하는 정보를 제공할 것, 실무 담당자 및 사업 시설에 대한 접근을 허용할 것, 지속가능경영 정보의 왜곡이나 거짓 보고를 방지하고 보고 내용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내부 제보 시스템을 수립할 것 등이다. 또한 지속가능경영 활동 및 성과가 미진한 협력사에는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개선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가이드라인에 명시하고 있다.
UN, OECD, ISO 표준 등 초국가적 기관에서는 CSR 논의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계의 각국 정부도 관련 정책을 도입하고 강제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CSR 이행 여부가 기업 가치를 측정하는 중요한 잣대로 자리 잡았고, 최근에는 중국도 적극적으로 CSR을 제도화하고 있다. 내수 시장이 작은 한국경제 특성상 이와 같은 흐름은 심각하게 인지하고 대처해야 할 시장 환경의 변화다. 이미 국내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요구하는 협력사 CSR 수준을 맞추지 못해 거래가 중단된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KT의 협력사 지속가능경영 가이드라인은 우리 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세계 시장에서 공급망 CSR은 권장 사항을 넘어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기 위한 계약 조건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는 신왕조를 개창한 이후 개성 주민들을 한양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새 왕조에 반대했던 고려 지식인들과 고려 왕족 후계자들은 이 정책에 따르지 않았다. 조선왕조는 개성에 잔류한 세력에 토지를 제공하지 않았고, 이들은 생계를 위해 상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왕실 출신 지식인들이 주류였던 개성상인들은 장사에 ‘품위’와 ‘신용’이라는 철학을 심었다. 그리고 이를 지킬 수 있는 인품을 가진 인물만 계원으로 선발했다. 지금으로 치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가입할 수 있는 멤버십 클럽인 셈이다. 나아가 이들은 공정한 상거래를 위한 독특한 기록 방식을 개발해 상용화했다. 서양보다 2세기나 앞선 복식부기,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置簿法)이다.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자산, 부채, 자본의 움직임을 기록해 재무제표를 작성했던 것이다. 이는 합리적인 경영을 위한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품위와 신용을 바탕으로 한 철학에서 비롯된 성과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거래를 위해 개발한 복식부기, 상단에 소속된 계원 전체의 상생을 꾀했던 행상. 둘 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생존과 발전을 도모한 결과다. 개성상인이 국가, 사회적으로 불리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 함께 가는 것은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발전을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