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근무를 강요하는 문화는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 기업문화의 상당 부분이 일본에서 기인한 만큼 일본의 직장인들 역시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2016년,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 덴쓰의 신입사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동경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던 고인은 장시간 초과근로 등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비난이 쏟아지자 일본 후생노동성은 덴쓰 임원들을 입건하고 회사를 압수수색 했다. 당시 경영자였던 이시이 사장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일본 청년들이 입사하고 싶은 1위 기업이었던 만큼 사회적 충격은 더욱 컸다.
이후 덴쓰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강제로 사무실을 소등하고 월 70시간으로 정했던 연장근무 상한을 65시간으로 낮추는 등의 긴급조치를 실시했다. 올해 6월부터는 매달 1회, 모든 직원이 일제히 쉬는 ‘인푸트 홀리데이’ 제도도 도입했다. 7월부터는 출근 후 개인 컴퓨터를 켜면, 마음의 상태나 인간관계 등을 체크하는 문항 중 무작위로 선정된 한 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시스템도 도입할 예정이다. 종업원들의 답변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직원들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야근 지옥이라 불리는 일본에서도 워라밸을 향한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스코는 네트워크 및 보안 시스템, 데이터센터, 무선 등 인터넷 관련 솔루션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 최대의 통신 장비 업체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기업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IT 분야에서는 공룡급 기업이다.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80%가 시스코의 네트워크 장비를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가히 인터넷의 핏줄이라 불릴 만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IT업계 특성 상 시스코는 조직 내 여러 분야에서 혁신을 꾀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피플 퍼스트’ 문화 정착 플랜이다.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 기조에 따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조직문화를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시스코 측은 IT기술의 등장이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혁신의 주체와 혜택은 바로 사람이라며, 직원 중심 문화를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내부고객 즉,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미국 본사의 기조에 발맞춰 시스코코리아 또한 국내 맞춤형 워라밸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월 2회 이상의 재택근무를 독려하고 특히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기간에는 1개월의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회사에 자녀들을 초대하는 ‘키즈 앳 워크’, 부모님을 초대하고 영화를 관람하는 ‘어버이날 행사’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직원 친화적 제도는 인재 유출을 막아 시스코의 경쟁력 고취에 기여하고 있다.
시스코는 사회책임경영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인류의 공유자산인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린피스는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기업의 리더십을 평가하고 있는데, 2010년, 시스코는 IT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술 솔루션을 제공하고 자체적으로 실시한 온실가스 방출 감소를 위한 노력들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실제로 시스코는 화석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사용 전력의 37%를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시스코는 2009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7년 대비 40% 감축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시스코는 교육에서 소외된 개발도상국 국민을 대상으로 최신 네트워킹 기술도 가르치고 있다. 현재 160여 개국에서 시스코 네트워킹 아카데미가 진행된다. 특히 오랫동안 차별받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여성들은 IT 전문 기술을 배움으로써 새로운 도전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시스코의 다양한 노력은 외부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컨설팅 기업 GPTW(Great Place to Work Institute)는 시스코를 '세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수년 간 선정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2018'에 선정하기도 했다. 컨설팅 기업의 객관적인 인증 말고도 의미 있는 성과가 있다. 직장평가사이트 글래스도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다. 미국 직장인들에게 자신의 직장에 만족하느냐고 묻고, 만족하는 사람이 많은 상위 10개 도시를 선정했는데 그 중 시스코 본사가 있는 산호세 지역이 5점 만점에 4.5점, 전체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시스코의 조직문화 혁신은 비즈니스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오피스의 글로벌화가 태동하던 2008년, 시스코는 남들보다 먼저 인터넷 동영상 시대의 리더를 목표로 했다. 온라인 데이터 패킷에서 텍스트의 비중이 낮아지고 영상 콘텐츠 중심이 되리란 것을 예측한 것이다.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시스코는 남들보다 먼저 관련 기술 개발과 솔루션 공급을 시작했다. 텍스트보다 무거운 영상 데이터를 신속하게, 끊김 없이, 원본 품질 그대로 전송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네트워크 인프라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늘날 글로벌 화상회의 솔루션 시장의 절반은 시스코가 점유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상회의 솔루션은 세계 각국에 지점이 있는 대기업에서만 활용되었지만 점차 소기업에서도 글로벌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있다. 화상회의 솔루션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시스코의 성과 역시 이러한 추세와 함께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에 대한 열망은 이미 대세가 되었다. 청년들은 급여가 조금 적더라도 직장인이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삶도 누릴 수 있는 기업을 ‘좋은 직장’으로 여기고 있다. 이것은 기업이 바라는 우수인재들도 마찬가지다. 소위 명문대학생들도 7급, 9급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것은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다. 좀 더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 개인의 열망을 나무라봤자 시대적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시간당 생산성을 높이고 우수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연구, 도입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 확보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워라밸을 위한 여러 고민과 솔루션들이 궁극적으로 선진사회, 선진기업으로 향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유희춘의 일기에 따르면 조선 관료들의 출퇴근시간은 탄력적이었다. 새벽 4시경, 6시경, 조식 후 등 출근 시간도 일정치 않고 퇴근도 저녁 10시, 저녁 9시, 중식 후 등 유동적이었다. ‘일이 없어 오늘은 집에서 쉬었다’는 기록으로 유추해보면 업무량에 따라 휴무도 조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관료에게 가족 부양이란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것과 동일한 일이었다. 유희춘 역시 생필품 출납과 손님 접대, 노비 관리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인사 하러 온 사망한 동료의 첩에게 쌀을 주어 보냈다거나 현감이 신발과 생선 등을 보내왔다는 기록도 있다. 생필품 관리는 관직에 있지 않았던 양반, 오희문의 일기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살림살이를 살피는 것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공통적인 과업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