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4차 산업혁명은 기업의 경영전략 전반을 뒤흔들어놓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이 혁신해야 할 분야는 플랫폼 비즈니스, 인공지능, 증강현실 같은 미래 산업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SNS(Social Network Service)는 오프라인에 흩어져있던 여론을 온라인에 결집시켰다. 기업은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의 입이 실체를 가진 힘이 되어 기업의 브랜드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시장의 요구는 해외에서 더 거세지고 있다. 공공 인프라 건설, 기술이전, 환경문제 해결, 일자리 창출 등 돈만 벌어가지 말고 제품을 생산, 구매해 주는 현지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업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사회적 가치 창출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필요조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잡은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네스카페로 유명한 글로벌 식품회사 네슬레는 사회적 가치 창출 기업의 대명사다. 그러나 과거 네슬레는 어린이 노동 착취, 실험용 분유 아프리카 공급, 밀림 파괴 등의 문제로 숱한 비난을 받았던 기업이었다. 네슬레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성공한 최초의 불매운동이었다. 결국 2006년, 네슬레는 전사적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 경영 체계를 구축, 기업의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이후 제3세계 지역사회와의 동반성장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10년 저개발국 커피농가의 수익성 개선 사업인 ‘네스카페 플랜’이 대표적이다. 당시 커피 가격 하락과 함께 커피 농가의 수익성도 악화되고 있었다. 네슬레는 커피 농가에 우수 품종 묘목을 보급하고 농업 기술을 교육했다. 이를 통해 커피 농가들은 작물의 품질 개선을 달성하였고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네슬레 역시 양질의 커피 원두를 안정적으로 확보 가능한 공급망 구축에 성공했다. 일련의 노력 끝에, 2013년 네슬레는 포춘지 선정 세계 50대 존경받는 기업 부문 1위에 선정됐다. 드라마틱한 반전이었다. 불매운동 대상이었던 기업이 착한 기업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한국서부발전은 정부 차원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크게 강조하기 전부터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실천해 온 공공기관의 자회사 중 하나다. 그중 하나가 상생결제시스템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산업부가 지난 2015년에 도입한 상생결제는 협력사가 결제일에 현금지급을 보장받을 수 있고, 결제일 이전에도 구매기업(대기업, 공공기관 등)이 지급한 외상매출채권을, 대기업의 신용으로 은행에서 현금화할 수 있는 제도다. 납품대금을 상생결제 예치계좌에 보관 후 하위거래기업에 직접 지급되기 때문에, 상위기업의 부도 여부와 상관없이 대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생결제시스템 확대는 일반 기업이 아닌 공공기관들마저도 미온적이었다. 2017년 산업부가 제공한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의 상생결제시스템 결제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상생결제 비율은 불과 2.5%에 불과했다. 특히 한전의 경우, 전체 거래 금액 13조 7천억 원 중 상생결제 금액은 10억 원에 불과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에너지공단, 대한석탄공사의 상생결제 비중 역시 0%대였다. 이에 반해 2001년 한전의 자회사로 분리된 한국서부발전은 전체 거래금액의 43%에나 달하는 금액을 상생결제시스템으로 사용해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한 기관으로 조사되었다. 이외에도 2013년 新고졸시대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상을 수상, 2014년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일학습병행 공공기관 1호 인증, 공공기관으로는 유일하게 일자리 창출 분야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서부발전은 사회가치 창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글로벌 화장품, 생활용품, 건강용품 기업이다. 자연히 주요 고객층은 여성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사회적 가치 창출 사업 역시 여성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대표적인 사업이 ‘희망가게’다. 자사가 후원하는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 지원하는 여성가장 창업자금 지원 사업이다. 25세 이하 맏자녀를 양육하는 여성가장이 그 대상이다. 공모를 통해 선발되는 희망가게 창업 대상자는, 최대 4천만 원의 창업자금을 연 1%의 금리로 빌릴 수 있다. 상환기간은 8년으로, 이자는 또 다른 여성가장의 창업지원금으로 적립된다. 원활한 가게 운영을 위한 창업교육도 지원한다.
2004년 1호 개점 이후 2017년 2월 기준, 300개의 희망가게가 문을 열었다. 창업주들의 가계 순수익은 월평균 254만 원, 대출금 상환율은 2017년 12월 기준 83%에 이른다. 이 수치는 희망가게의 여성가장들이 성공적인 경제적 자립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아모레퍼시픽은 희망가게 사업을 통해 기업 이미지 고취는 물론 잠재고객의 구매력도 제고하고 있는 것이다.
풀무원은 대표적인 우리나라 식품기업이다. ‘바른 먹거리’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지속적으로 친환경 정책과 지역사회와의 공생경영을 추진해왔다. 그중 하나가 신재생에너지 공정이다. 풀무원의 녹즙 공장, 건강기능식품 공장 등에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도입해 온실가스 및 탄소 배출량 절감에 힘쓰고 있다. 두부 공장, 어묵 공장 등에서도 가동되는 보일러도 화석 연료인 LPG 보일러에서 바이오 연료인 목재 펠릿 보일러로 교체했다. 풀무원은 동반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노력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청밀’과의 업무 협약을 통해 계열사인 푸드머스 자체 소분 포장시설인 농산물집배센터 작업인력을 장애인과 55세 이상의 고령자, 여성 등으로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농촌지역의 지역 및 여성 고용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의 매입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다. 더불어 지역농가와의 계약 재배를 통한 상생경영도 확대, 추진하고 있다. 푸드머스는 농산물우수관리인증(GAP) 농산물 클러스터를 구축, 기준을 만족하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를 양성해 우수한 품질의 신선한 농산물 공급망을 확보했다. 재배농가 또한 풀무원이라는 매입처를 통해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기술 혁신에 이어 사회적 가치 창출까지 요구받고 있다. 문제는 사회적 활동에서 기업의 역할을 찾아 수익성과 연결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기업은 봉사단체가 아니라 영리단체이며, 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지속가능한 수익성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할 것인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경영자와 주주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 창출 사업도 그 기대효과를 예측하고 측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가운 것은, 최근 사회적 가치 측정을 위한 다양한 지표가 경영 일선에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가 재무적 요소와 비재무적 요소 모두 투자 대상 선정에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 수익률이다. 실제로 DJSI(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 EGS 연계형 펀드의 수익률이 일반 기업의 것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KPMG에서 개발한 True-Value 또한 볼보, 홀심, 삼성 등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 측정 지표다. SK그룹의 경우에는 DBL라는 자체 지표를 개발, 각 계열사의 성과 측정에 시범 도입 중이다.
“측정 없이 개선 없다.” 피터 드러커가 남긴 말이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재무적 수익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은 외면당하고, 잠재고객의 구매력까지 고취시키는 기업들이 환영받고 있다. 시장에서의 생존과 사회적 가치 창출 역량은 점점 더 밀접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 기업들의 비약적 도약은 사회적 가치 창출과 그 성과의 측정이라는 난제의 해결에 달려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