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은 국가 단위를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부패 사건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경영 손실을 줄이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진출 국가의 반부패 규제화 동향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경영 활동에 있을 리스크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요 무역 상대국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은 경영 활동에 필수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반부패 관련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주요 반부패법 제정 국가들 중, 우리 기업과 무역에 있어 중요한 관계에 있는 국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011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이후, 우리 기업들의 EU 진출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왔다. EU의 반부패 관련 주요 제도로는 2011년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반부패 패키지가 있으며, 회원국 차원에서도 상당수가 부패 예방 및 근절을 위한 법적 도구를 갖추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요 유럽 수출 상대국이자 주요 반부패법 제정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제도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 뇌물수수법 영국의 가장 강력한 반부패법은 영국 뇌물수수법(UK Bribery Act)이다. 영국 뇌물수수법의 적용 대상은 영국 기업 및 자회사, 영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계 기업, 영국 기업의 해외 에이전트 모두를 포함하며, 부패 범죄 발생 지역을 불문하고 영국과 관계가 있는 기업 또는 개인을 기소할 수 있다.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의 공여, 약속, 수뢰 및 기업 간 뇌물수수 행위 모두를 범죄로 규정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법은 공무원뿐 아니라 관련된 기능에 종사하는 사기업 업무담당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적 성질을 갖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 혹은 사업·무역·전문직업·고용 등과 관련된 업무 종사자나 공공기관 대리 업무 종사자 등이 포함된다.
#사례: 대표적인 뇌물수수법 위반 사례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탠다드은행 영국 법인의 위반 사례를 들 수 있다. 2013년에 스탠다드은행은 수익성 채권 위임을 목적으로 탄자니아 자회사인 스택빅 탄자니아(Stanbic Bank Tanzania)를 통해 탄자니아 정부 고위 관리에게 6억 달러의 뇌물을 공여하였다. 그 결과, 영국의 중대비리조사청(SFO, Serious Fraud Office)에 총 1680만 달러(약 191억 원)의 벌금과 총 3220만(약 366억 원) 달러에 달하는 부패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또한 현지 미국 투자자들을 위해 투명한 정보를 공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에서 부과된 420만 달러(약 47억 원)를 지불해야 했다. 하나의 부패 행위로 인해 여러 기관으로부터 동시에 처벌되면서 은행은 더 큰 피해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은행은 부패 혐의가 발견되었을 때, SFO에 자진 신고를 하며 협조적인 태도로 대응했고 그 결과, 벌금의 1/3을 감면받을 수 있었다. 보다 유연하고 당국에 협조적인 태도가 처벌의 수위를 낮추는 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기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프랑스의 반부패 관련법으로는 2016년 제정한 사팽2법(Sapin Ⅱ Law)이 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매출 규모 1억 유로 이상에 근로자 500명 이상의 프랑스 기업 및 기업 대표자/경영진과 다국적 기업 및 기타 관계 회사들이다. 특히 이 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적용 대상 기업들이 부패 및 로비 범죄를 예방 및 감지하는 준법 감시 기관/부서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행동강령, 위반 처벌 규정, 부패 리스크를 표시한 리스크 매핑(mapping), 관련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평가, 내·외부 회계 감사, 교육, 내부고발제도, 효율성 관리를 위한 내부 시스템을 포함한 8대 요건을 갖춘 반부패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보유할 것을 요구한다.
#사례: 파리에 기반을 둔 엔지니어링, 건설 서비스 회사인 테크닙(Technip)이 있다. 테크닙은 미국의 플랜트 엔지니어링 회사인 케이비알(KBR, Kellogg Brown & Root)을 비롯한 회사들과 나이지리아 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관련 합작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나이지리아 공무원들에게 1억 8000만 달러(약 2049억 원) 상당의 뇌물을 지급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자국의 케이비알의 위반 혐의를 조사하던 중 드러났으며, 테크닙은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9800만 달러(약 1115억 원)의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테크닙이 미국 증권시장 상장사가 아니었음에도 케이비알의 파트너였다는 이유로 해외부패방지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테크닙은 해외부패방지법의 고액 벌금 순위 TOP 10위에 랭크되는 등 막대한 과징금을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테크닙 사건은 프랑스 내 부패 척결을 위한 강력한 법의 필요성을 대두시키는 데 일조했고, 이는 사팽2법 도입의 배경이 되었다.
미국은 우리나라 수출 2위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며, 최초 국제 반부패법인 해외부패방지법 제정국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미국의 주요 부패방지법인 해외부패방지법의 처벌 대상을 아시아권으로까지 확장해왔다. 우리 기업들도 해외부패방지법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일명 ‘미 당국의 해외 부패기업 사냥법’인 이 법의 적용 대상은 주로 외국 공무원, 정당 등에 대한 뇌물공여자이다. 이 법은 자국 기업들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들에도 확대 적용되고 있으며, 외국 기업이 미국에서 직접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미국의 통신망 혹은 전산망 등을 이용해 부패 행위를 했거나 미국 영토 내에서 부정행위가 이뤄진 경우에는 이 법의 규제를 받게 된다. 적용 대상이 되면, 기업은 수출 면허가 박탈되거나, 미국 내 공공사업 입찰이 금지되고 증권 거래가 정지되는 등의 엄격한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면밀한 검토와 주의가 필요하다.
#사례: 대표적인 위반 사례로는 우리나라의 에스에스아이 코리아(SSI Korea)가 있다. 이 회사는 제철, 금속 재활용 및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는 미국 슈니처(Schnitzer)라는 회사의 한국 자회사이다. 슈니처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자사의 고철을 판매할 목적으로 에스에스아이의 종업원 및 대리인들을 통해 한국의 제철소 관리자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 뇌물은 현금 지급뿐만 아니라 “환불” 혹은 “할인” 등의 형태로도 제공되었고, 회계 장부 등에서는 이를 교묘히 감췄다. 결국, 슈니처는 거의 8백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납부하였고, 독립적인 컴플라이언스 컨설턴트를 3년 간 보유해야만 했다. 자회사 설립을 통해 아시아에서의 시장 확대를 기대했던 슈니처는 결국 자회사의 부패 행위로 인해 금전적 피해와 함께 이미지 실추라는 쓰디쓴 결과를 얻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수출 1위 국가인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부패 척결 슬로건 하에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도 엄격하게 뇌물을 단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과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중국의 반부패 정책 및 제도에 대한 인지는 필수적이다.
중국, 형법과 중국경쟁법 중국의 부패 방지 관련 주요 법에는 중국 형법과 중국 인민공화국 반부정당경쟁법(중국경쟁법)이 있다. 먼저 중국 형법은 국가공무원 및 국가 기관, 국유기업, 회사, 기관, 인민 조직 등이 포함되는 단체들에 적용되며, 뇌물의 공여 및 수수 모두를 중대한 범죄로 간주한다. 중국경쟁법은 시장의 공정경쟁을 촉진·보호하고자 제정되었으며, 주목할 만한 주요 내용으로는 처벌로서 경영자의 공개신용기록에 처벌사항을 기록하여 신용등급을 훼손하는 것 등이 있다.#사례: 대표적인 위반 사례로는 영국계 대형 제약회사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의 뇌물 전달 스캔들이 있다.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이 자사 제품 판매를 목적으로 중국 내 의사, 의료기관, 병원 직원 등에 2007년부터 6년간 약 30억 위안(약 4915억 원)의 뇌물을 여행사를 통해 전달한 것이다. 해당 사건은 중국 형법에서 금지하는 뇌물공여 행위로,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고위 관리자들에게 2~4년의 집행유예가 선고되었으며, 회사는 30억 위안에 달하는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이는 중국 내 다국적기업에 있어서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중국 내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의 매출액은 급감하여 2012년 중국에서의 7억 5900만 파운드(약 1조 1138억 원)의 매출이 2013년에는 5억 8000만 파운드(약 8512억 원)로 감소했고 2014년 역시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보이며 하락세를 유지하게 되었다.
2020년에 이르면 베트남은 우리나라와의 교역액이 1000억 달러(약 113조 원)를 넘어서며, 중국 다음의 2대 수출시장으로 등극할 전망이다. 신흥 시장으로서의 급부상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 ‘신남방정책’의 핵심 국가로 거론되며 양국 경제 교류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아세안에서 베트남의 부패방지법을 살펴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베트남, 베트남 형법 베트남의 부패 방지 관련 주요 법률로는 1999년 제정된 후 2015년 개정된 베트남 형법(Penal Code)이 있다. 이 법은 공공 부문의 뇌물수수, 공여죄 모두를 위법으로 간주하며, 2015년의 개정을 통해 민간 부분의 뇌물 및 외국 공무원, 그리고 국제기구 직원에 대한 뇌물수수까지 그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이에 따라 공기업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의 임직원 역시 뇌물수수죄, 공여죄, 뇌물 중개 및 횡령 등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닌다. 뇌물의 기준 금액은 모두 동일하게 2백만 동이다. 다만, 법인의 형사책임은 영리 목적의 법인에만 적용되며, 비영리법인의 경우에는 법적 책임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사례: 도쿄에 기반을 둔 일본의 철도컨설팅업체인 일본교통기술(JTC)가 있다. 2014년에 일본 매체가 일본교통기술이 철도설계사업 등에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및 우즈베키스탄 공무원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것을 보도하자, 베트남 당국은 이 회사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 결과, 일본교통기술 임원 세 명이 4100만 달러(약 466억 원) 가치의 ODA 사업 수주를 대가로 베트남 철도회사 공무원에게 2009년에서 2014년 사이 약 49만 5천 달러(약 5억 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일본교통기술은 일본 법원으로부터 관련 임원 징역 및 9천만 엔(약 9억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의 베트남에 대한 ODA 지원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고, 일본 국제협력기구는 베트남과의 ODA 관련 부패가 3번 발생할 경우, 베트남 ODA 사업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ODA 사업 자체와 밀접한 업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교통기술로서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