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야는 500년이 넘은 일본 전통 화과자 업체다. 무로마치 시대(1338~1573) 후반부터 양갱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어지간한 왕조 이상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황실에 납품하기도 했으니, 그 맛 또한 인정받은 기업이다. 파리에도 지점이 있으며 최근에는 우리나라 유명 백화점에도 진출했다. 화과자 하나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것이다. 현재 토라야의 경영자인 쿠로카와 미츠히로 사장은 설립자의 17대 후손이다. 후손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형태 자체는 국내의 오너경영 구도와 비슷하다.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쿠로카와 사장의 마인드다.
“재산은 공유하되 경영은 분리한다”일본 역시 오너 가족들의 다툼과 사회적 물의로 기업이 위기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토라야는 처음부터 가문 중의 한 사람만 경영에 참여하도록 했다. 재산은 공유하지만 경영은 공유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집안의 재산과 기업의 경영을 철저히 분리한 것이다.
일본은 가업을 중시하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일, 즉 업(業)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기조가 강하다. 업을 잘 받들고 가다듬어 흠 없이 다시 후대에게 전하겠다는 일종의 신념이다. 마치 바톤을 받아든 계주 선수 같다. 지금 경영자로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결코 자신만의 소유는 아니라는, 언젠가는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책임 의식으로 일한다. 이것이 토라야가 500년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과 함께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일 것이다.
토라야가 그 오랜 세월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또 있다. 과감한 혁신이다. 토라야처럼 오래된 기업, 그것도 장인정신이 요구되는 제조 분야의 기업은 전통이라는 덫에 걸리기 쉽다. 옛것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소비자가 찾지 않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500년 전통 기업이라고 하면 무조건 수제를 고집할 것 같지만, 토라야는 균일한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자동화 기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유행에 걸맞게 와인과 어울리는 맛을 개발, 신제품으로 출시하기도 하고, 기존과 다른 현대적인 분위기의 카페를 오픈하기도 했다.
“전통을 이어가는 건 혁신이다”현재 17대 당주인 쿠로카와 미츠히로는 시대의 변화를 적절하게 파악해 그에 맞춰 도전하는 정신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고 했다. 전통을 이어가는 건 혁신이라는 것이다. 경영자의 과감한 의사결정이 가능했기에 토라야는 수백 년의 시간 동안 그 이름을 유지하며, 트렌드에서도 밀려나지 않는, 진정한 전통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너경영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기업을 소유한 오너가 직접 경영하는 기업은, 토라야처럼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도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들은 오너경영 체제의 장점을 폭 넓게 활용해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본처럼 장수기업이 많은 독일 역시 상속요건을 완화했고 미국은 상속세 자체를 폐지했다. 경제의 근간인 기업 상당수가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하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너는 기업의 소유자다. 그들의 갑질은 “내가 설립했으니 내 기업, 내 기업에서 봉급을 받아가니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에서 나온다. 하지만 기업은 오너 한 사람의 힘으로 크지 않는다. 임직원들의 땀과 소비자들의 애정 어린 관심 역시 설립자의 노력과 더불어 기업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최근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는 오너리스크, 진정으로 기업을 사랑한다면 오너들은 직원들 위에 군림하며 빈축을 사는 ‘왕’이 아니라 그들을 책임지고 이끄는 ‘리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노주계에 대한 내용은 1741년(영조 17년) 여주 이씨 문중의 이희성이 노비 10명과 맺은 노주계 문서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총 벼 네 석을 마련하되 두 석은 이희성이, 나머지 두 석은 노비들이 갹출했다. 양측이 계를 만든 목적은 분명했다. 양반은 기득권층에 대한 노비들의 반감을 달래 그들을 안정적으로 소유하기 위해서, 노비는 자신들의 생활 여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였다. 기금은 주인집 담장을 수리하거나 빈번한 잡역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는데 쓰였다. 마땅히 노비들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고용해 대신 일을 시켰던 셈이다. 양반이 시키면 노비는 마땅히 따르는 게 조선시대의 주종관계다. 그런데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타인을 고용하게 된 것이다. 노주계는 출생 신분에서 비롯되는 양반과 노비의 관계가 노동에 따라 일정한 임금을 지불하는 노사관계로 진일보하게 되는 변화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양반은 자신의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 노비와의 상생을 택했다. 이러한 양반의 혁신적인 결단으로 노비들은 상전을 살해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최소한의 휴식과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노주계와 같은 상생의 조치가 없었더라면 조선왕조는 훨씬 더 빨리 무너졌을 것이다. 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최소한의 존중과 상생을 추구했던 노주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기득권을 가졌던 양반들이 노비와의 공동 기금 조성을 주도하고 또 수용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명제가 보편적인 상식이 된 오늘날,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는 갑들이 있다면, 숙고해봐야 할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