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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8년
04월호

사례돋보기

뇌물의 역습, 부패 리스크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부패가 일상이었던 80년대의 한국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십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정치인들의 뇌물 수수 의혹은 여전히 뉴스의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다. 씁쓸한 일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청탁금지법 같은 부패방지 정책이 시행되고 시민의식도 향상되면서 묻혀있던 비리들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스럽지만 부패의 오래된 고리를 끊어내는 과정이라면 마땅히 감내해야 할 일이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 시민단체가 부패 척결에 힘쓰는 것은 특별히 도덕적이라기보다는 공정한 경쟁 시스템이 곧 뛰어난 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력보다 뇌물이 통하는 곳에 인재가 머물리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뇌물 스캔들은 개인과 기업, 국가에 엄청난 손실을 끼쳤다. 이번 사례 돋보기에서는 조직적 관행과 개인의 일탈에서 비롯된 부패가 얼마나 큰 타격으로 되돌아왔는지 짚어보았다.

◎ 관행이 불러온 부패 리스크

관행. 전통과는 사뭇 다른 의미로 읽히는 관행은 뇌물수수로 입건되는 피의자들의 단골 멘트다. 그 정도의 향응, 사례금은 업계 특성상 건네는 성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탁금지법 시행 전에는 직무관계자들이 3만 원 이상의 향응을 대접받아도 별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관행 하에 저질러진 부패 스캔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백억 대의 손실을 불러온 관행, ‘불법 리베이트’

2리베이트. 상품을 판매한 사람이 상품 대금으로 받은 액수의 일부를 구매자에게 사례금조로 되돌려주는 행위다. 의료계의 리베이트란 제약회사가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에게 제공하는 금전적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리베이트 비용이 환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리베이트 쌍벌제, 약가 인하 정책이 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베이트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미 제약업계의 관행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B제약 같은 대형 제약회사도 이러한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B제약은 지난 2013년과 2016년 적발된 리베이트 건으로 142개의 의약품목 가격을 평균 3.6%인하하라는 판결을 받으며 전년 대비 연 약 104억 원 대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판매촉진을 노린 리베이트가 오히려 막대한 영업 손실을 준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의사협회마저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B제약의 리베이트로 인해 많은 의사들이 사법처리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만에 100억 원의 매출이 하락했다. 심각한 위기였다. 그렇다고 국내의 중소제약 회사가 반사이익을 본 것도 아니었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이미 약효가 검증된 다국적 제약회사의 의약품을 처방하면 그만이었다. 관행이었던 불법영업 활동이 국내 의료산업 자체를 흔들었던 것이다.

공공입찰 참여금지, ‘뇌물 공여’

공공입찰. 국가에서 추진하는 사업을 따내고자 하는 자가 자신이 희망하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사업은 대금 지급도 확실하고 시장에서의 신뢰도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에 많은 기업들이 공공입찰에 참여한다. 정부에서는 기업이 공정한 계약집행에 해가 될 염려가 있을 경우, 일정기간 모든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입찰참가자격제한 제도를 두고 있다. 국가사업에서의 부패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비리를 저질러 입찰참가제한 처분을 받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뇌물을 주면 민원을 해결해주는 공공기관과 기업의 오래된 유착, 관행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A중공업도 그중 하나다. 2013년 A중공업은 UAE 수출용 부품을 납품하게 해달라는 청탁의 대가로 K기관 관계자에게 17억여 원의 뇌물을 건넸다. 이 사건으로 A중공업은 2019년까지 공공입찰 참여가 금지됐다. 대규모 프로젝트 발주가 뜸한 요즘, 국가사업 수주가 원천 차단된 것은 엄청난 손실이다. 당장 군함, 잠수함 등을 건조하는 A중공업의 특수선 사업부는 직격탄을 맞았다. 원래 우리 업계는 이런 식으로 해왔다는 관행의 답습이 일감절벽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시킨 부패 사슬, ‘정경유착’

남미의 몇몇 나라에서는 매일 부패 스캔들이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해있다. 부패의 결과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듯, 경제 역시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다. 브라질 검찰은 2014년 3월부터 ‘세차 작전’이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정경유착을 비롯한 불법 관행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고강도의 수사를 벌이고 있다. 그 결과, 오데브레히트 스캔들이라는 거대 규모의 뇌물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브라질의 대형 건설회사인 오데브레히트가 공공사업 계약을 하기 위해 남미 여러 국가의 정치인과 선거본부, 정당 고위 관계자들에 뇌물을 뿌린 것이다. 그 액수는 무려 8억 달러 상당(8516억 원)이었다. 수사팀의 칼날은 전현직 대통령들에게도 향했다. 이 과정에서 룰라 대통령의 후임자 지우마 호셰프 대통령이 탄핵됐다. 지지율 83%를 기록했던 ‘노동자들의 대통령‘ 룰라 또한 오데브레히트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것이 밝혀져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한때 브라질의 영웅이었던 룰라까지 불법 정치자금을 받는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에 브라질 국민들은 분노와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많은 브라질 국민들은 ‘세차 작전’ 수사팀의 수장인 모루 판사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열렬히 그를 응원하고 있다. 부패 척결이 브라질의 성장과 도약에 필수조건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개인의 탐욕이 불러온 부패 리스크

개인의 탐욕으로 벌어진 부패 사건도 적지 않다. 구매담당자가 납품업체 사장에게 금품을 요구한다거나 공무원이 특정 기업에게 향응을 제공받고 행정상 편의를 제공하는 일은 요즘에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개인의 부패 행위 또한 제품의 이미지, 기업 가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H사의 납품비리, 안심계란의 배신

안심계란은 H사의 연구원에서 실시하는 항생제 검사, 살모넬라 검사, 잔류 농약검사 등을 통과한 계란에 붙여주는 브랜드다. H사가 보증하는 만큼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축산 농가들이 선호하는 납품처이기도 하다. 덕분에 안심계란 사업부의 납품업체 담당자는 막대한 힘을 가진다. 안심계란 브랜드를 붙이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계란에 대한 전 국민적인 불신이 높았던 시기, 안심계란 사업 담당자의 뇌물 수수 및 불법 납품 재계약 사건이 있었다. 당시 뇌물을 수수한 직원 두 명이 구속되었고, 뇌물 공여자였던 농장주와의 납품계약이 해지되었다. 문제는 계약이 해지된 농장주가 납품과정에서의 H사 직원들의 비리를 빌미로 재계약을 요구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견디다 못한 H사 측은 재계약을 승인하였다. 불법을 저지른 납품업체와는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신뢰하는 브랜드에 비리로 얼룩진 물건이 납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안심계란을 신뢰했던 소비자들은 배신감을 토로했다. 떳떳하지 못한 개인의 행실로 인해 열심히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직원의 부패는 곧 기업의 위기, 알리바바의 부패 스캔들

알리바바는 마윈이 설립한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다.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정직한 조직문화가 필수이기에 마윈은 2010년부터 사내에 반부패 부서를 세우는 등 부패를 방지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개개인의 마인드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4년, 뉴욕증시 상장을 앞두고 부패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알리바바 그룹 인력자원부 왕카이 부총재가 연루된 뇌물 사건이었다. 알리바바의 연회, 광고 촬영 등을 주관하는 부서의 수장이었던 왕 전 부총재가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대가성 뇌물을 받은 것이다. 뇌물의 액수는 무려 약 4억 2천 5백만 원에 달했다.

직원들의 부패는 주식 폭락으로 이어졌다. 2015년 5월, 뉴욕증시에 화려하게 데뷔한 알리바바의 주가는, 짝퉁과 뇌물의 기업이라는 중국 정부의 날 선 비난과 가격 부정행위에 대한 벌금형 사태로 인해 2014년 11월 대비 33%나 하락했다.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준법경영 시스템이 작동해야 하는데, 한사람의 직원부터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알리바바의 행태가 투자자들의 실망을 부른 것이다.

◎ 사회적 책임활동을 넘어 경영활동으로의 부패 리스크 관리

조직적 관행과 개인의 일탈. 원인은 달라도 부패의 끝은 동일하다. 신뢰의 균열이다. 관행이든 일탈이든 일단 뇌물 스캔들이 터지면 소비자들은 해당 업계나 관련 당국의 검증 프로세스 전체를 의심하게 된다. 결국 개인들은 직접 비교 분석에 나서거나 아예 시장에서 이탈해 대체재를 찾게 된다. 해외 브랜드를 구입하거나 아예 소비하지 않는 식이다. 이러한 기조가 심화되면 국가 경쟁력 하락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부패는 필연적으로 불신을 부른다. 뇌물, 향응 같은 탈법적 관행이 조직 전체의 위기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부패방지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L사의 경우, 경영투명성위원회를 설립해 외부인사에게 상품의 입점, 편성, 퇴점의 권한을 맡겼다. 내부 비리를 차단하고 외부 전문가들의 평가를 통해 보다 경쟁력 있는 상품을 발굴하고자 하는 것이다. D제약을 비롯해 K사, S사 등 부패방지경영시스템 국제표준(ISO 37001) 인증을 획득하는 기업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고통스럽더라도 곪은 상처는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다. 부패는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정교한 방지책이 있음에도 막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사건이 터졌을 때 이를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미봉책으로 덮어버릴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다. 부패의 원인을 돌아보고 벗어나고자 노력할 때, 기업은 물론 국가 경쟁력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