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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8년
04월호


윤리연구소 - 인사이트+

부패 기업에서 준법경영 선도 기업으로, 지멘스의 도약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뇌물, 횡령, 비자금 조성 등의 많은 부패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부패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그러면 그렇지‘라며 자조하는 분위기가 있다. 유례없는 속도로 발전한 한국 뿐만 아니라 오랜시간 국격을 키워온 선진국 역시 부패에 있어 청정지역은 아니었다.

경제, 문화, 기술,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의 글로벌 기업도 엄청난 부패를 저지른 전력이 있다. 바로 1874년에 설립되어 백 오십여 년의 역사를 지닌 지멘스다. 미국에 GE가 있다면 독일에는 지멘스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멘스는 기술강국 독일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 창사 이래 최대 위기, 부패 스캔들

2006년 말, 지멘스는 분식회계, 공금횡령, 뇌물 제공 등 전형적인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다. 횡령된 공금은 무려 1억 유로가 넘었고 유럽 도처에 흩어져 있던 간부들의 계좌에서도 수천만 유로의 비자금이 발견됐다. 이것은 일부 개인의 일탈이 아니었다. 뇌물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회사의 과업이었다. 이 돈은 타 국가에서의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정치인과 공공기관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주는데 쓰였다. 무려 7천억 원에 달했다.

“뇌물 수수는 지멘스 사업모델의 한 부분이었다”
지멘스의 부패 스캔들을 브리핑하는 독일 연방범죄수사국 대변인의 말은, 내부 관계자들뿐 아니라 독일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터였다. 독일의 대표기업인 지멘스의 성장 배경이, 뛰어난 기술력이 아니라 부정한 뇌물이었다니,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멘스의 대외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다른 기업들과의 제휴도 잇달아 연기됐다. 4억 6천만 유로(약 6천 9백억 원) 규모의 비자금, 100억 유로(약 14조 8천 8백억 원)에 달하는 벌금 판결, 공공 계약의 해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였다.



◎ 위기에서 시작되는 ‘준법정신’

일촉즉발의 지멘스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건 지멘스 역사상 첫 외국인이자 외부인인 페터 뢰셔 회장이었다. 위기의 근원이 부패에 있었던 만큼 개혁에 대한 뢰셔 회장의 의지는 강력했다.

“'클린 비즈니스'.
부패에 대한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ㆍ무관용)'”
뢰셔 회장은 준법 프로세스를 기초부터 재점검하고 전담 준법감시인 제도를 도입했다. 제 아무리 유능한 임직원이라도 준법 프로세스에 어긋나는 행위를 저지른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징계하였다. 지멘스 코리아의 경우에도 고객에게 식사나 선물을 제공할 시 사전에 회사의 승인과 준법감시인의 자문을 구하도록 되어있다.

부패 척결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의지는 직원들의 로열티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직원들이 “회사가 나를 불법으로 내몰지 않는다”, “나를 책임지고 보호한다”라며 경영진의 조치에 환영한 것이다. 준법경영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무너지는 듯했던 지멘스의 수익도 회복세에 들어섰다.

◎ 최악의 부패 기업에서 최고의 반부패 기업으로의 변신

2017년 지멘스는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평가에서 1위로 선정됐다. 최악의 부패 기업으로 추락한 2006년 이후 불과 10여 년 만에 체질개선에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변화에는 지멘스 코리아의 노력도 있었다. 2014년,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가 한국 지멘스를 반부패 우수 기업으로 선정한 것이다. 이날 김종갑 한국지멘스 회장은 기조연설에서 지멘스의 창업자 폰 지멘스의 말을 언급했다.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미래를 팔지 않겠다”
지멘스는 2009년부터 세계은행과 협력해 15년 간 총 1억 달러(약 1130억 원)의 지원금을 청렴 비즈니스와 부패 척결에 앞장서는 세계 비영리기관에 지원하고 있다. 추락한 이미지의 회복과 동시에 부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 사업보다 준법

부패를 청산하겠다는 지멘스의 의지를 모두가 믿어준 것은 아니었다. 돈 되는 일은 다 했고, 뇌물도 서슴없이 준 과거의 행적이 불과 몇 년 만에 청산되겠느냐는 시선도 분명히 있었다. 더불어 준법경영과 이익추구는 상충하는 가치라는 인식은 지멘스의 재기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선을 갖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부패로 입었던 손실이 적당한 수준이 아니라 존립 여부를 결정하는 치명적인 사항이었기에 지멘스는 준법경영에 대해 철두철미한 체질개선에 임했다. 준법경영에 대한 보상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으며, 어떤 언어로든 신고 가능한 내부고발 핫라인 ‘텔 어스(Tell us)’라는 제도를 만들어 직원들과 외부인들이 익명으로 내부비리를 신고할 수 있도록 외부 법률회사 소속의 변호사를 독립적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지멘스는 준법경영을 통해 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하며 보란 듯이 변신에 성공했다. 준법경영 시스템이 정착된 이후인 2009년, 사상 최대의 매출실적을 기록하고 2010년에는 순이익이 배로 급증하는 성과를 거두어 준법경영이 기업 성장의 바탕임을 입증했다.

지멘스의 부패 척결 사례는 현재 재벌 총수들이 연이어 뇌물 공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뇌물은 필연적으로 대가가 따라오기에 그 당장의 이득 안에는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설사 적발되지 않더라도 부패가 관행인 조직의 직원들이 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할 리 없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꾸는 리더들이라면 물이 아래로 흐르듯 준법정신 역시 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뢰셔 회장의 말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참고



시대를 관통하는 인재상, ‘청백리’
권한을 가진 공직자와 그 권한이 필요한 민원인, 양측의 탐욕이 만나 생기는 부패. 고대 이집트에도 뇌물이 공정한 재판을 망친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니, 이쯤 되면 뇌물은 인류의 역사와 동행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시대를 막론하고 개혁 의지를 가진 군주라면 누구나 ‘청백리’, 뇌물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인물에 목말라했다. 어느 시대, 어느 조직에서든 뇌물은 조직의 발전 동력을 꺾어버리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 뇌물을 준 자의 임명을 취소하다

청탁은 부패 방지를 위한 여러 제도가 있는 현대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범죄다. 하물며 정과 의리 같은 가치들이 지금보다 우선했던 조선시대에서 매관매직은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뇌물을 거절한 관리, 구치관의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조선시대 세조 때 정승 자리에 오른 구치관(1406~1470)은 일체의 청탁을 배격해 청백리의 표상이라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여러 기록 중 인사권을 가진 이조판서 시절의 일이 특히 눈길을 끈다. 어느 날 지인이 인사 청탁을 하기 위해 뇌물을 들고 찾아오자 구치관은 두루마리 하나를 펼쳐 보여줬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임명초안인데, 귀공의 이름도 여기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나 일신의 영달을 구하는 귀공의 모습을 보니 나라를 위한 인물은 아닌 것 같소.” 라며, 구치관은 명단에서 그 지인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 관료 중 유일하게 뇌물을 거절하다

구치관이 좌의정을 지낼 무렵, 조선의 관료사회에 대대적인 뇌물 스캔들이 터졌다. 구치관을 제외한 6부 판서와 정승들 모두가 뇌물을 받은 것이 발각된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모든 장, 차관들이 뇌물을 받고 민원을 해결해준 대형 사건이다. 심지어 당시 영의정이었던 정인지는 조선의 4대 부호에 들어갈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축재를 일삼았다. 최고위 관료들이 전부 휘말린 뇌물 사건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인물은 구치관뿐이었다.

이처럼 뇌물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공직사회를 위협해왔다. 사회적 감시망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공직을 맡은 개인들의 엄중한 마음가짐이 먼저 요구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감시제도가 취약했던 왕조시대라 할지라도 청백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가 있어도 결국 이를 지키는 것은 개인의 양심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조선시대보다는 훨씬 엄중한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더 많은 구치관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어느 자리에 있던지 뇌물의 유혹을 받고 있다면 홀로 불법에 참여하지 않은 구치관의 일화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