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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8년
06월호


윤리연구소 - 인사이트+

포용과 성장, 인텔

'띵- 띵딩딩딩’. 누구나 한 번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인텔 특유의 징글(Jingle, 사운드 로고,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짧은 길이의 멜로디)이다. B2B기업인 인텔은 자사의 CPU칩을 내장한 기업의 제품 광고 말미에 자사의 로고를 보여주는 대중광고를 했다. 물론 공짜로 한 것은 아니다. 광고를 붙이도록 허락해주는 기업에는 자사의 CPU 납품원가를 할인해줬다. 부품을 생산하는 B2B기업이 일반 대중 마케팅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어리석어 보였던 인텔의 전략은 제대로 성공했다. 가정용 PC가 보급되던 9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면 펜티엄이라는 브랜드를 기억할 것이다. 이 펜티엄은 컴퓨터 브랜드가 아니라 인텔의 CPU 브랜드다. 완제품의 브랜드는 사라지고 일개 부품의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강렬히 자리 잡았던 것이다.

B2B기업은 광고를 해 봤자 돈 낭비라는 기존 인식과 달리, 막대한 비용을 TV광고에 투자한 인텔. 인텔이 이토록 남다른 결정을 한 배경은 무엇일까?


◎ 인텔, 자신만의 생태계를 만들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CPU 품질은 평준화되기 시작했다. 인텔이 공들여 성능 개선을 해 놓으면 경쟁업체들은 순식간에 그것을 모방해 버렸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던 인텔은 자사의 CPU인 286(i80286), 386 (i80386), 486(i80486)을 브랜드화하기 위해 상표 등록을 추진했다. 하지만 법원은 문자가 아닌 숫자와 영문 이니셜의 조합은 상표로 인정해줄 수 없다며 불허했다. 인텔은 생존을 위해 정식으로 브랜드를 만들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1991년 봄, 1억 달러를 투자해 “인텔 인사이드” 브랜드 개발에 착수했다.

인텔은 협력사들의 광고에 자사의 광고를 삽입하는 식으로 브랜드를 알리기 시작했다. 광고 삽입의 대가는 CPU 납품단가 6% 할인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협력사들이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유명한 인텔의 ‘띵- 띵딩딩딩’이라는 징글(Jingle)은 협력사들의 제품 광고 말미에 삽입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독자적인 광고였다면 이만큼의 파급력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일반 소비자들은 인텔이 생산하는 제품, CPU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제품에 대한 설명 없이 그저 협력사 완제품과 함께 인텔 인사이드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것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이것은 인텔과 인텔의 부품을 납품받는 컴퓨터회사 양측이 모두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결과를 낳았다.

인텔의 포용적 성장 전략은 기술 분야로도 이어졌다. 세계적인 IT기업인 인텔은 생각보다 기초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 세계 최고의 프로세서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수많은 중소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그들의 기술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1991년 만들어진 인텔캐피털은 유망한 중소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인텔의 자체 투자조직이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부품, 코드 등을 연구하기 위한 시행착오 비용은 줄이고 투자 수익까지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인텔의 투자 덕분에 해당 중소기업은 안정적으로 성장하며 인텔에 고품질의 제품을 제공했고, 인텔은 경쟁사보다 빠르게 우수한 CPU칩을 생산, 공급할 수 있었다.

인텔캐피털은 단순 투자에서 나아가 중소기업의 동반자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업체를 방문하고 수시로 소통하며 애로사항을 듣고 개선방안을 함께 고민한다. 투자한 벤처의 경영 자율성도 존중해준다. 투자한 기업이 반드시 인텔과 독점계약을 해야 한다는 조건도 없다. 그들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인텔캐피털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유망한 중소기업을 키워주고 그들의 부품을 공급받으며, 인텔 인사이드라는 브랜드로 고객사와 함께 마케팅을 전개한 인텔. 함께 공존하고자 건설한 인텔 생태계가 오늘날의 인텔을 만든 핵심 동력인 것이다.

◎ 인텔, 혁신을 낳는 기업문화를 만들다

대중을 상대로 한 마케팅은 굉장히 고난도의 영역이다. TV 광고는 엄청나게 비싸고 시장 분석 및 소비자 심리 파악도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기업에 납품을 하는 B2B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제품의 기능을 설명할 이유도, 투자로 얻을 당장의 이득도 없다. 하지만 인텔은 그것을 했고, 세계적인 성공 사례가 됐다. 이러한 발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텔 특유의 기업문화 때문이다.

첫째, 인텔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있다. 어떤 이슈가 있다면 동료나 직속상사는 물론, 중간관리자, CEO에 이르기까지 직접 이슈를 논의할 수 있다. 토론이 됐든, 논쟁이 됐든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살아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둘째, 인텔은 서열보다 개인의 전문성이 중요한 회사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면 직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존중받는다. CEO라고 해서 따로 주차 편의를 받지도 않는다. 늦게 오면 뒤에 주차를 하고 일찍 오면 앞자리에 주차한다. 셋째, 모든 사람들은 회사의 규정을 지켜야 하며 모든 공정에는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 이것은 제품 양산 과정에도 적용되어 엄격한 품질관리로도 이어진다.

즉, 인텔은 수평적이면서도 규율을 지키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환영하는 문화를 만들어왔다. 이러한 기업문화가 인텔을 B2B기업 특유의 안일주의에 빠뜨리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정책과 전략을 내놓게 한 것이다.

◎ 인텔, 세계 위에 우뚝 서다

인텔은 1968년에 설립된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다. 컴퓨터의 두뇌, CPU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최초의 기업이기도 하다. 컴퓨터의 역사를 쓴다면 개국 공신인 셈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타이틀도 눈부시다. 2016년 세계 브랜드 14위, 2017년 포춘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46위, 2017년 레퓨테이션 인스티튜드 선정 글로벌 평판 순위 8위, 반도체 시장 24년간 1위 기업이 인텔이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인텔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인공지능 생태계 구축 가속화, 인지 플랫폼을 통한 제조업과 항공 우주산업 공략, 양자컴퓨터용 중앙처리장치 개발 등 인텔은 분명히 다음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의 데이터 폭증 시대에서는 데이터의 생산 및 보관이 아니라 고성능의 프로세싱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프로세싱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인텔이 가장 잘해왔던 분야다.

혼자 성장하는 것보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에 충실하고 전문성을 길러 협업하는 방식을 택했던 인텔. 50년 동안 인텔이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포용적 성장이 있다. 협력사의 납품단가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거나, 자본력으로 밀어붙여 시장을 독점한다면 잠깐의 성과는 몰라도 지속가능한 성장은 어렵다. 협력사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질 낮은 부품을 사용해야 될 테고 자연히 품질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면 다양한 고객의 목소리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100년 기업을 꿈꾸는 경영자라면 오랜 시간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인텔의 포용적 성장 전략을 복기해봐야 할 것이다.


참고



“상대방의 이익까지 고려하라.”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상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개성상인의 신조다. 실제로 개성상인은 다른 상인들과 경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각자의 강점을 존중하고 협력해 모두가 이문을 볼 수 있게 했다. 오늘날의 포용적 성장 철학이 저 유명한 개성상인의 뛰어난 상술과 상업 경영의 토대였던 것이다.
◎ 각자의 장기를 살려 협력하다

조선 후기, 개성상인은 국내 상권의 중심지인 서울 이외에도 청나라와의 교역에 집중하면서 의주 상인인 만상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의주는 조선 사행(使行)이 본국을 떠나는 곳이자 중국 사신이 들어오던 관문으로서 대청무역이 고도로 발달해 있던 곳이었다. 특히 만상은 홍삼의 공식 수출을 관장하는 포삼별장을 맡고 있었는데, 홍삼을 제조하는 증포소는 포삼별장의 허가가 있어야만 운영이 가능했다. 그리고 만상은 개성상인에게 증포소 운영을 허가해주었다. 이는 홍삼의 생산, 유통, 판매의 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던 개성상인의 경쟁력을 십분 활용한 것이었다. 즉, 대청무역에 있어서 만상은 유통을, 개성상인은 생산을 담당했던 셈이다.

개성상인의 이야기를 그린 최인호의 소설 <상도>는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상생하기보다는 자본력으로 굴복시키고 정당한 대가 없이 영세기업의 아이디어를 빼앗는 것은 결국 시장의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각자의 강점을 십분 활용하여 발전을 꾀했던 개성상인. 상대도 이문이 남아야 한다는 개성상인의 상도는 경제성장률 둔화, 불평등 심화와 같은 오늘날 한국경제의 난관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