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에코백 구입,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 소비, 일회용품 근절을 위한 텀블러 사용, 장애인 고용 기업의 제품 구매. 밀레니얼 세대라고도 불리는 요즘 20~30대 젊은 층의 소비 특징이다. SNS에 익숙한 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고 이를 지지하는 기업들의 제품을 구입, 홍보하는 일에 적극적이다. 개인의 신념과 가치를 소비활동에서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Union Bank of Switzerland: 스위스연방은행)가 발표한 ‘UBS 백서: 다보스포럼 2019’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소비자의 81%가 자신의 소비 패턴과 가치관을 일치시키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9%의 소비자는 개인적 가치관과 일치하는 윤리경영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용의가 있고, 71%는 환경, 지배구조 등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기업의 제품은 의식적으로 사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 패턴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KDI(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정보센터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윤리적 소비’라는 칼럼에서 윤리적 소비를 크게 생태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분류했다. 이번 사례 돋보기에서는 각 차원별 사례를 통해 윤리적 소비에 대한 기업 대응의 필요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생태적 차원의 윤리적 소비란 자연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소비를 의미한다.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한다거나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 프랜차이즈의 음료를 소비하는 행위 등이 생태적 차원의 윤리적 소비라고 할 수 있겠다.
패스트패션은 유행에 맞춰 바로 만들어내는 옷으로, 소재보다는 디자인을 우선시하고 가격이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빠르게 기획, 제작하여 유통시킨다는 의미에서 패스트패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H&M, ZARA, GAP 등 내로라하는 SPA 의류 브랜드들이 여기에 속한다. 최근 윤리적 소비자들은 쉽게 사서 쉽게 버리는 패스트패션이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을 초래한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패션업계는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이고 폐기된 의류를 수거, 재활용하거나 기부하는 등 대책 마련에 힘을 쓰고 있다.
래코드는 코오롱FnC에서 2012년 론칭한 업사이클링(upcycling) 브랜드다. 업사이클링이란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제품을 만드는 일을 의미한다. 통상 의류 제품은 이월상품이 되면 상설할인 매장으로 갔다가 3년차 재고가 되면 소각 처리된다. 래코드는 이처럼 한 번도 팔려본 없는 재고 의류들을 해체해 새로운 옷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시장의 반응은 성공적이다. 매출 규모는 론칭한 지 5년 만에 4배 성장했다. 패스트패션을 식상해하고 개성을 중요시 하는 패션 마니아들에게도 호평 받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업계가 자신만의 가치관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의 감성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온라인 소비 규모는 나날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중 신선식품을 저녁에 주문하고 다음날 새벽에 받는 새벽배송 서비스는 바쁜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사용되는 포장 패키지에서 나오는 과도한 쓰레기 때문이다. 새벽배송을 이용하는 소비자들 중에서도 쓰레기 문제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2월, 현대홈쇼핑은 포장재로 인한 쓰레기 문제를 염려하는 윤리적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응해 선착순 4000명을 대상으로 1인당 아이스팩을 최대 20개까지 수거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현대홈쇼핑이 택배 비용을 부담하고 타사의 제품 포장에 쓰인 아이스팩도 수거해간다. 올해 총 100만개 이상의 아이스팩을 재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우며, 이렇게 수거한 아이스팩은 거래 중인 협력사 및 아이스팩 재사용을 희망하는 식품업체 및 기관, 병원, 전통시장 등에 도 무상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이와 같이 소비자들의 친환경 대책 요구와 이에 대한 기업의 대응이 맞물리면서 윤리적 소비는 트렌드 이상의 혁신을 이루어내고 있다.
사회적 차원의 윤리적 소비는 생산, 소비하는 지역과 상생하고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소비를 의미한다. 아동학대나 노동력 착취가 없는 공정무역의 물품을 구매하거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는 등의 행위가 사회적 차원의 윤리적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싼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옵션관광과 쇼핑을 강권하는 여행업계의 폐단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여행상품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공감만세는 관광객과 현지인의 상생을 추구하고 현지 일자리 창출을 통해 현지인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공정여행을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공정여행 패키지 상품을 제공하고 기업 및 학교 등의 여행을 기획, 인솔하고 있다. 매출의 90%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이익의 90%는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인 것이다.
한편, 대기업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약점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여행객은 현지인 가이드와 소통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며 비싸다는 생각은 못했다고 말한다. 최근의 여행 트렌드는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고 오는 것이 아니라, 현지와 현지인을 통째로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지와 상생하고자 하는 공정여행 수요는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흔한 간식거리인 초콜릿도 원재료 수급, 포장 공정, 유통 및 판매하는 국가가 모두 다르다. 그러나 문제는 초콜릿 공정에서 아동노동이 아동노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 농장에서는 5~17세의 아이들이 전기톱이나 칼을 가지고 나무를 오르내리며 카카오 원두를 수확한다. 아이들은 종일 뙤약볕 아래서 카카오의 껍질을 벗기고 자루에 담는 고된 노동을 반복하지만, 정작 초콜릿을 먹어본 적은 없다. 다국적 기업에 원두를 공급하는 브로커들이 원두를 지나치게 싼 가격으로 사들이기에 부모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노동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디바인 초콜릿(Divine Chocolate)은 이러한 카카오 생산지의 아동인권 문제를 고민하는 윤리적 소비자들을 위한 초콜릿이다. 가나의 카카오 생산자 조합 쿠아파코쿠(Kuapa Kokoo)에서 카카오를 공급받아 독일에서 만들고 세계에 판매된다. 디바인 초콜릿의 최대 주주는 쿠아파코쿠 조합원이다. 일반 공정무역이 생산자에게 공정한 대가를 주는 것이라면, 디바인 초콜릿은 생산자들이 회사의 수익까지도 공유하는 구조다. 협동조합 생산자들은 디바인 초콜릿으로 소득이 높아지고, 자연히 부모들은 아이들을 카카오 농장이 아니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됐다. 다른 카카오 생산지 어린이들과 달리 졸업 후 카카오 농장을 이어받겠다는 아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새로운 농업기술을 배우고 초콜릿 시장에 대한 지식도 쌓으면서 카카오 판매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당한 대우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자립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최근 개인이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미닝아웃’ 현상이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윤리적 소비는 미닝아웃 시대의 소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 소비자들은 상품이 아니라 신념을 산다. 기업에 인권, 환경, 상생 등과 같은 윤리적인 가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속가능경영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도 있고 판로 확보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값을 치르더라도 보다 가치 있는 소비를 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는 점차 거세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윤리적 소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기업들이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