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장에서 주식회사는 가장 대표적인 기업 유형이다. 투자 금액만큼만 유한책임을 지며 자본 유치가 수월하고 여러 명이 투자하기에 위험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서 오는 문제점 또한 내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리인 문제 *다. 투자자의 자금으로 경영을 대신하는 대리인, 즉 경영자가 주인인 주주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할 수 있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도 문제다. 경영자는 주주보다 우월한 정보를 활용하여 배임, 횡령, 채용 비리 등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기업지배구조는 이러한 대리인 문제를 해소하고 기업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모니터링하는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이번 호 사례돋보기에서는 기업지배구조가 어떻게 대리인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실제 기업 사례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경영자와 주주의 목적을 일치시키고 싶다면? - 인센티브 보상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즉 보상을 주면 경영자가 투자자의 이익에 따라 움직여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인센티브 보상으로는 현금보너스나 스톡옵션 제도가 대표적이다. 특히 기업의 주식을 지급하는 스톡옵션 제도는 자금력이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이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금보너스는 경영자가 미래 가치보다는 단기 수익을 추구하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스톱옵션 또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위험한 경영전략을 선호하게 되며 근본적으로 주식시장은 외부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아 경영진의 노력과 주가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단점을 지닌다.
따라서 대리인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기업지배구조 구축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란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통제장치다. 기업 외부로는 외부감사인, 기관투자자, 채권자, 증권집단소송, 투자은행, 정부 등이 있고, 기업 내부로는 이사회, 감사위원회 등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기업지배구조를 이루는 주체들은 적절히 경영자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주인-대리인 관계(Principal-Agent Relationship)에서 비대칭정보(Asymmetric Information)로 인하여 대리인이 주인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이해에는 부합하는 행동을 취하려는 경향
창업자, 스타 CEO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 이사회
창업자나 대외적으로 인기가 높은 스타 CEO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로 두자니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내쫓자니 구성원들에게는 힘이 없다. 이럴 때 창업자나 경영자를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이 이사회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다. 잡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구성원들과 심각한 갈등을 일으켰다. 민감한 연봉 문제로 프로젝트 팀들 사이에 싸움을 붙이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이 영입한 CEO인 존 스컬리와도 심각하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조직 분위기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실적까지도 부진해졌다. 잡스의 지나친 독선과 기업가치 훼손에 이사회가 나섰다. 표결을 실시해 창업자이자 회사 지분까지 상당히 소유하고 있던 잡스를 애플에서 퇴출시킨 것이다.
재무제표의 신뢰성이 의심된다면? - 외부감사
‘존경받는 기업 10위’, ‘10년 만에 미국 재계 서열 5위까지 오른 기업’, ‘미국 MBA 졸업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직장’. 1990년대 무렵 엔론의 화려했던 대명사들이다. 이렇게 잘 나가던 엔론은 어쩌다 분식회계의 대명사가 됐을까? 엔론 사태가 발생한 2001년 당시의 외부감사 제도가 취약했기 때문이다. 엔론의 경영진은 유령회사를 만들어 거대한 부채와 거추장스러운 대규모 고정 자산을 털어냈고, 엔론의 신용을 포장해 견실한 기업으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했다. 2001년 유령회사 중 한 곳의 실체가 폭로되면서 엔론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거짓된 재무제표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엔론 사태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기업을 감시해야 하는 회계법인이 도리어 회계 부정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회계법인이 기업에 컨설팅 서비스와 외부감사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었던 시스템이 문제였다.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은 엔론 외에도 월드컴, 글로벌크로싱의 분식회계 역시 눈을 감아준 사실이 드러났다. 재산을 날린 소액 주주들과 갑자기 생계가 막막해진 실업자들이 미국 사회에 대거 쏟아졌다. 이를 수습해야 하는 미국 주식시장과 정부 재정도 큰 타격을 입었다. 취약한 기업지배구조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촉발시켰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는 외부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회계법인들을 감시하는 기업회계조사위원회를 새롭게 설치하고, 회계법인이 기업에 컨설팅 서비스와 외부감사를 동시에 제공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회계장부에 오류가 있을 경우 경영진이 처벌받도록 하는 사베인스-옥슬립법(Sarbanes-Oxley Act, 상장기업 회계개혁 및 투자자보호법)을 제정했다.
경영의 비재무적 요소까지 관여하려면? - 기관투자자
‘땅콩회항’. 대한항공 총수일가의 유명한 갑질 사건이다. 국민들은 분노했지만 일반 대중들이 대기업 총수일가에게 실질적으로 항의를 할 방법은 딱히 없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운행하는 국적기 항공사에 국민은 과연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공적연금을 운용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투표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대한항공 지분의 11.56%를 보유한 2대 주주, 국민연금의 반대로 고(故) 조양호 전 대한항공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를 의미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끼친 국내 첫 사례였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 즉 집사처럼 주주의 이익과 공익을 위해 오너 리스크가 있는 경영자의 연임을 반대한 것이다.
기관투자자란 연금, 기금,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의 법인투자자를 의미한다. 경영진을 모니터링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발생한다. 개인 소액주주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기관투자자는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자본력과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 모니터링 비용에 비해 얻는 이익도 크다. 최근까지 우리나라는 기관투자자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는데 소극적이었으나, 2018년 7월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 즉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경영전략, 지배구조, 사회, 환경 등 비재무적 요소까지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기업지배구조, 지속가능경영의 토대
이사회, 외부감사, 기관투자자 외에도 투자은행, 적대적 M&A, 금융기관, 주주행동주의 등 기업지배구조는 기업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에 의해 구성된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기업을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더 발전해나가도록 돕는 존재라는 것이다.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가 없다면 기업은 주인이 없는 회사가 되어 무사 안일주의와 도덕적 해이에 빠지거나 경영진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으로 지나친 리스크를 안고 각종 부정에 빠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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