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리뷰
산재예방을 위한 형법의 역할과 산재예방 계획
  • 우희숙(2018), “산업안전과 형법”, 「형사정책연구」, 제29권 제1호.
  • 고용노동부, 「제5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 (2020. 5.)

고용노동부는 매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발표하여 사업주나 실제 행위자에게 위험에 대한 주의를 환기한다. 이것은 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을 사업주나 실제 행위자의 주의의무위반으로 파악하고, 주의의무위반을 처벌하면 산업재해가 감소할 것이라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책임자’를 색출하여 형법적 책임을 물음으로써 사건을 마무리하는 프로세스가 반복된다. 우희숙의 논문 “산업안전과 형법”은 형법적 책임 추궁이 산업재해의 예방에 효율적이었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산업재해 발생 현황’이 보여주는 숫자에 따르면(표면적으로는) 그렇다고 응답한다.

산업재해 현황
샘플이미지 고용노동부의 제5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은 2022년까지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산업재해는 2010년 98,645명에서 2017년 89,848명 수준으로 꾸준히 감소하였으나, 2017년 산재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으로 쉽게 산재보상을 받게 되자 2018년 102,305명, 2019년 109,242명으로 증가했다. 사고사망자는 2010년 1,114명에서 2014년 992명으로 떨어진 뒤 900명대 수준에서 정체되다가 2019년 855명으로 대폭 감소하여 최초로 800명대에 진입하고, 사고 사망만인율도 처음으로 0.5‱ 이하인 0.46‱로 하락하였다.

업종별 사고사망자는 건설업이 428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다음으로 제조업이 206명(24%)이다. 사업장 규모별 사고사망은 5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에서 76.8%가 발생해서 657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유형별 사고사망 현황을 살펴보면, 떨어짐(36.6%)·끼임(11.6%)· 부딪힘(8.7%)에서 절반 이상 발생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 제3항은 떨어짐, 끼임, 부딪힘 등의 위험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업주의 안전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업주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근로자에게 상해나 사망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산업재해 발생 원인이 사업주나 실제 행위자의 주의의무위반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형벌을 통한 산업재해 예방의 한계
인간공학(human factors)의 관점에서 산업재해의 발생 원인은 휴먼 에러(human errors)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저자는 휴먼 에러 발생의 요인들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고, 적절한 형법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산업재해를 효율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산업안전 선진국인 미국과 독일은 사업주의 안전조치 의무위반에 대해 원칙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며, 만일 그 위반으로 근로자의 생명 또는 건강을 위태롭게 한 경우에는 형벌을 부과하지만, 그 법정형의 상한은 최대 1년이다. 산업안전 선진국 사례처럼 처벌조항의 신설이나 법정형의 상향이 산업재해 예방에 반드시 효율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법원(2008도7030판결)은 사업주가 비계 해체 작업 과정에서 추락방지망을 설치할 의무를 위반한 사건에서 설치 의무가 규칙에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음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규칙은 위험 예방을 위한 모든 행위 유형을 담을 수 없고, 새로운 기술기준을 신속하게 반영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판결의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기소 및 처벌률이 낮아지는 행정형법의 집행 결손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집행의 결손이 지속되면, 사업장에서는 규칙을 반드시 준수할 필요가 없다는 통념이 굳어져서 산업재해를 일으키는 잠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 처벌기준만 상향할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 발생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여 형법적 대응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형법의 역할
샘플이미지 산업재해는 물적 원인(불안전 상태)과 인적 원인(불안전 행동)이 복잡하게 얽혀 발생한다. 인적 원인에는 휴먼 에러와 위반(violation)이 있고, 휴먼 에러란 의도치 않은 실수로 의도적인 위반과는 구분된다. 따라서, 휴먼 에러가 원인인 산업재해는 형법만으로 예방될 수 없으며, 의도적인 위반의 산업재해는 일반적으로 형법적 대응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사전에 모두 파악하여 규칙에 나열하는 것이 어렵고, 실제 작업방식 및 작업환경에 적합한지 의문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사업주 입장에서 영업비용으로 간주하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고 운에 맡겨버릴 가능성이 높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에 위험성평가 실시 규정이 있다. “사업주는 건설물, 기계·기구·설비, 원재료, 가스, 증기, 분진, 근로자의 작업행동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한 유해·위험요인을 찾아내어 부상 및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의 크기가 허용 가능한 범위인지를 평가하여야 하고, 그 결과에 … 따른 조치를 하여야 하며, 근로자에 대한 위험 또는 건강 장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추가적인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위험성평가는 형법적 예방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자율규제에 의한 예방정책’이므로, 제도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산업안전 선진국처럼 위반 정도에 따라 차등화된 과태료 부과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저자는 제안한다. 또한, 사망이나 상해의 경우에는 산업안전 선진국과 비교하여 법정형의 상한을 재정비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
고용노동부는 2020년 제5차 산업안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해서 사고 사망만인율을 2024년 0.2‱대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계획안에는 안전한 일터를 위해 의무 주체와 보호 대상을 확대하고, 원하청이 함께 사업장 안전보건관리를 강화하게 했으며, 화학물질 관리기준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실행하도록 했다. 또한, 계획안에는 산재 사망사고 감축을 위해 추락·끼임·부딪힘 등 5대 사망사고 요인을 집중적으로 관리·감독하고, 안전보건 주체별 역할을 강화하며, 산업보건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기업윤리 차원에서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 체계 확립이 중요하다. 사업주가 사업장 내 위험 요소를 발굴하여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위험성평가를 산재보험료 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작업환경개선으로 이어지게 제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해·위험방지계획서가 현장의 사망사고 위험요인 관리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게 내용을 개편하고 효율적 이행을 점검해나가야 한다. 한편, 중대산업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위험설비의 설치 시 공정안전관리(PSM)에 따라 안전하게 관리되도록 제도를 점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앞장서 안전보건 인프라를 확충해 나가고, 안전보건 문화가 기업 윤리경영의 핵심 콘텐츠가 될 수 있게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