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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터뷰: 지멘스

독일 베를린과 뮌헨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전기·전자 기업 지멘스는 1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뛰어난 엔지니어링 역량과 품질, 글로벌 사업 기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성장해온 기술혁신 기업입니다. 이와 같은 장수 기업에서도 “소 잃고 외양간을 튼튼하게 고친” 뼈아픈 준법 사례가 있습니다. 회사가 또다시 큰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강화된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 지멘스의 컴플라이언스에 대해 소개합니다.

지멘스가 컴플라이언스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현재의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은 2006년 말 시작되었던 부정부패 사건을 계기로 재발 방지를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컴플라이언스 제도는 그 이전에도 회사에 존재하고 있었으나, 효과적으로 운영되지 못했습니다. 해당 사건은 사업의 신규 수주 및 기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나라의 해외 공무원들과 고객들에게 뇌물을 준 사건이었고, 이는 1847년 지멘스 창립 이래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본 건으로 지멘스는 독일과 미국 당국과의 합의 및 독립적인 내부조사비용 등으로 총 22억 유로, 한화로 약 2조 6천 4백억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이후 지멘스가 도입한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은 생존을 위한 강력한 조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멘스의 컴플라이언스 시스템과 수준 높은 컴플라이언스 이행을 위해 지멘스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소개해주세요.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 (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FCPA) 위반으로 8억 달러의 벌금을 지불하게 된 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구축된 지멘스의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은, 미국 법무부의 ’기업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평가지침’에 상당 부분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15년 동안 운영되어온 현재의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은 그동안의 시장 상황, 사업 활동 및 규제 환경의 변화, 그리고 직원들의 인식 수준에 맞게 진화해 왔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변하지 않는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주요 요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경영진의 강력한 컴플라이언스 의지 (The Tone from the Top) 부정부패 사건 이후 대부분의 최고 경영진이 회사의 운영 및 관리감독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고, 그룹 회장을 포함한 신규 최고 경영진이 대거 내정되었습니다. “청렴한 사업만이 지멘스 사업이다.”를 강조하면서, 각국의 경영진들도 반부패에 대한 메시지를 회사 전반에 일관되게 전달하였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지멘스의 모든 경영진들은 컴플라이언스는 타협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청렴과 윤리준법문화는 위에서부터의 실천이 없는 한 만들어질 수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이는 저희가 과거의 사례로부터 배운 값비싼 교훈입니다.

2. 예방 (Prevent) 컴플라이언스 위반을 방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리스크를 확인하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조치 사항을 경영진 및 주요 사업부서장과 함께 설정하고 이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9년에 개정된 ‘사업행동지침 (Business Conduct Guidelines, BCG)’은 모든 임직원이 사업을 하는 국가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반부패, 반경쟁, 노동, 인권, 환경 등 주요 원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9년 1월에는 문답 형식 등 직원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개정 되었습니다.

사업행동지침에 대한 온라인 교육은 전 세계 모든 직원이 2년 주기로 수료해야 합니다. 또한, 신규입사자 및 특정 보직자, 승진자는 일반적인 컴플라이언스 교육과 별개로 추가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이 외에도 리스크별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징적인 교육 중 하나는 해당 부서장들이 담당 준법지원인으로부터 1차 교육을 받고, 해당 내용을 숙지하여 팀원들에게 내림교육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를 ‘Integrity Dialogue & Integrity Moments’라고 하는데, 부서 업무 환경에 맞게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서 실시할 수 있어서 그 효과가 뛰어납니다.

지멘스는 공정하고 투명한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내부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외부 파트너들과도 협력합니다. 특히 세계은행, 유럽투자은행과의 합의를 통해 미화 1억 달러가 넘는 기금을 조성하였고, 해당 펀드를 바탕으로 ‘지멘스 청렴성 이니셔티브 (Siemens Integrity Initiative, SII)’를 구성하였습니다. 지멘스 청렴성 이니셔티브는 2010년부터 2025년까지 15년 동안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전 세계 50여 개국, 85개의 프로젝트에 약 1억 2천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총 3차례의 펀드를 받아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중 3차 펀드 프로젝트인 ‘Business Integrity Society(BIS)’는 프로젝트 파트너인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함께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3. 발견 (Detect) ‘Tell Us’는 내부고발 핫라인 시스템으로, 외부의 독립적인 서비스 업체를 통해 운영되고 있어 익명성이 보장됩니다. 13개국의 언어로 24시간 운영되는 핫라인 시스템의 링크는 지멘스의 인트라넷뿐만 아니라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게시되어 있어 지멘스 직원은 물론 협력업체 등 외부인에게도 개방되어 있습니다. 접수된 모든 신고는 조사전문가들이 신고 내용의 타당성을 확인하고, 확인되는 즉시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됩니다. 이 외에도, 외부의 법률 전문가 ‘Ombudsperson’을 고용하여 전문가를 통한 신고도 가능하며, 최근에는 직원들이 담당 준법지원인 또는 최고 준법지원인에게 직접 위반 신고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4. 대응 (Response) 2007년 이전까지만 해도 지멘스는 부정부패, 반경쟁적인 위반 사항에 대해 제대로 된 징계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명확한 징계 절차가 마련되었고, 이후로는 법률 및 사업행동지침 위반 행위에 대해 무관용원칙이 적용된 징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징계 조치가 완료되었다고 해서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추가 조치까지 완료되어야 비로소 해당 조사 건이 종료 처리됩니다. 접수된 신고와 징계 결과는 매년 발간하는 지멘스 지속가능보고서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컴플라이언스 이행 이후 기업에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가 있나요?

지멘스에게 컴플라이언스는 일시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지멘스의 사업 방식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이는 회사와 직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초기에는 엄격한 절차 때문에 직원들의 불만과 반발도 있었습니다. 영업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많은 컴플라이언스 교육을 받아야 했고, 추가적인 절차를 따라야 하는 부담감이 컸으며 일부 현장에서는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결같이 유지되어 온 컴플라이언스는 이제 기업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고, 직원들은 컴플라이언스가 직원 본인과 고객, 그리고 회사를 지키는 든든한 안전장치로 작동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포브스,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다보스포럼이 각각 진행한 글로벌 주요 기업 평가에서 지멘스는 가장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006년 사건 당시에는 회사의 존폐가 불투명했던 지멘스는 10여 년 만에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컴플라이언스 이행 이후 기업에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가 있나요?

첫째는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진정성이 담긴 최고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기업에 맞는 컴플라이언스 절차입니다. 유엔글로벌콤팩트 등 국제기구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가이드라인이나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준비 중인 윤리준법경영 프로그램 등을 참고하여 기업의 규모, 사업 환경 등에 맞는 절차를 수립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도입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독립적이면서 지속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적정 인원이 배치된 조직이 필요합니다.

지멘스의 컴플라이언스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어찌 보면 계속 변화하는 기업의 대내외적 환경, 규제적 환경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부족함이 다 채워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해 왔던 것처럼 방심하지 않고 초심을 지키면서 꾸준히 컴플라이언스 문화를 이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