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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8년
05월호


윤리연구소 - 인사이트+

다양성을 포용하다, P&G

2017년, 일반인으로 돌아간 미셸 오바마가 다시 한 번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영부인 시절에는 생머리에 웨이브를 넣고 공식 석상에 섰던 그녀가 흑인 여성 특유의 곱슬머리를 한 사진이 인터넷에 퍼진 것이다. 그 자체로 다양성의 상징이었던 ‘흑인’ 미셸 오바마가 영부인 자리에서 물러나고 나서야 본연의 헤어스타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자연스럽지 않았던 그녀의 생머리, 정확히는 백인 여성의 헤어스타일이 영부인답다고 생각해 온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불편한 일침을 가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년에 진행된 P&G의 샴푸 브랜드 팬틴이 전개한 ‘모든 강한 머리카락은 아름다운 머리카락이다(All Strong Hair is Beautiful Hair)’ 캠페인은 주목할 만하다. 흑인의 곱슬머리 역시 백인의 생머리처럼 아름다운 것이며 모든 인종의 특수성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이다.

다양성 존중을 위한 P&G의 노력은 대외 홍보에서 그치지 않는다. 포춘지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여성 임원비율 43%,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26위, 소수민족이 일하기 좋은 기업 20위, 고용평등실천우수기업 등 직원 평등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직원이 회사에 가장 큰 자산’이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성 확보에 전사적인 노력을 해 온 P&G의 경영철학이 있다.


◎ 차별 없는 고용, 차별 없는 인재 양성

P&G의 역사는 1837년부터 시작된다. 무려 180여 년 동안 전 세계 가정용품 시장의 맹주 자리를 지켜온 셈이다. 이러한 P&G의 저력은 인재 양성 정책에서 나온다. 성별, 연령, 인종에서 자유로운 고용은 물론 누구나 능력만 된다면 해외 지사에서 근무할 수 있다. 한국 지부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P&G의 인력개발본부 수리야 라이 상무는 인도 출신의 힌두교 신자다. 한국 직원들은 인도 출신 라이 상무를 만나면 제대로 식사를 했는지 물어보곤 한다. 소고기를 먹지 않는 라이 상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P&G가 목표하는 바는 이러한 상이한 문화권의 조화에서 나오는 다양성의 일상화다.

“나도 언젠가 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라이 상무는 다양한 개인들 사이에 평등의 가치가 정립된 후에야 비로소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하게 된다고 했다. 여성, 소수민족, 인턴 등 누구나 ‘나도 언젠간 CEO가 될 수 있다’고 꿈꿀 수 있을 때 기업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다양한 시선의 포용, 혁신

가정용품을 구매하는 고객의 상당수가 주부다. 가족의 안녕을 책임지는 만큼 주부들은 까다로운 소비자다. P&G가 엄격한 주부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중심의 경영철학에 있다. ‘어떤 제품이 잘 팔릴까’가 아닌 ‘어떤 제품이 일상의 불편을 덜어줄까’를 고민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개방형 혁신 프로그램인 C&D(Connect & Develop)의 적극적 도입이 P&G가 소비자 중심 제품 개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분석한다. 개방형 혁신은 기업이 대학 연구소나 개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하는 방식이다. 실제 현재 P&G의 신제품 중 절반 이상은 이러한 개방형 혁신을 통해 직, 간접적으로 탄생하고 있다.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혁신은 필수불가결한 요소”

어느 조직이나 혁신을 부르짖지만 변화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진짜 혁신을 위한 기준과 시선은 조직 밖에 있는데, 외부의 다양한 시선은 두렵고 낯설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신하려면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와 인내가 필수적이다. P&G는 그것을 해낸 것이다.



부패 척결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의지는 직원들의 로열티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직원들이 “회사가 나를 불법으로 내몰지 않는다”, “나를 책임지고 보호한다”라며 경영진의 조치에 환영한 것이다. 준법경영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무너지는 듯했던 지멘스의 수익도 회복세에 들어섰다.

◎ BE YOU, 포용하는 기업 문화

최근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당했다’는 선언은 사회적 냉대가 두려워 침묵했었던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용기를 주었다. 이후 피해자들을 위로하며 그들을 지지하겠다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이 이어졌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실체적인 사회 현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BE YOU', 당신이 되겠습니다”
P&G의 'BE YOU' 사내 캠페인은 한층 더 나아간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당신이 되겠다’는 슬로건 하에 서로 다른 외모, 성격, 강점을 가진 동료들을 포용하고 응원하는 기업문화를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공통된 관심사를 지닌 직원들을 위한 동아리 활동, 팀 리더들이 팀원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케어 프로그램, 여러 가지 업무 스타일을 존중하고 장려하기 위한 상황별 리더십, 각기 다른 직원들의 협업을 돕는 유형별 코치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전사적 차원에서 다양성 확대를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 다양성의 인정과 성장

가족 공동체는 문화권, 국가, 인종은 물론 개인의 상황별로 여러 형태를 가진다. 따라서 다양성에 대한 P&G의 고민은 필연적이다. 가정용품의 소비자는 전 세계의 모든 개인들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조직이 한 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도 살아남기 힘든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P&G의 브랜드 라인업은 그러한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킨다. 팬틴(샴푸), 타이드(비누), 페브리즈(섬유탈취제), 오랄비(칫솔), 팸퍼스(기저귀), 질레트(면도기), 프링글스(과자) 등은 명실상부한 톱 브랜드들이다. 2017년 기준으로 세계 180여 개국 65개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미국 가정의 95% 이상이 P&G 상품을 쓰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경영철학이 시장에서의 성공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업계나 전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글로벌 시대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타 문화권, 본질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 향상이 필수적이다. 다양성 존중이야말로 P&G가 180여 년 동안 가정용품 시장의 맹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경쟁력의 본질인 것이다.


참고



세종대왕의 다양성 존중 정책
세종대왕은 성군의 대명사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서도 그만큼 두루 선정을 펼친 군주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세종이 이토록 존경받는 이유는 한글 창제, 천문기구 개발, 의녀 제도, 출산휴가 도입 등의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애민정신 때문이다. 나와 다른 처지의 사람들, 일반 백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을 추진하고 끝내 성공시킨 것이다.
◎ 130일의 출산휴가를 부여하다

세종 이전에는 출산한 노비에게 주어지는 휴가기간이 단 7일이었다. 갓난아기를 두고 다시 복무를 해야 하니 사망하는 영아가 많았다. 이를 가엾게 여긴 세종은 노비들에게 출산 후 100일의 휴가를 부여했다. 만삭인 채로 밭일을 하다가 근무지에서 출산을 하거나 귀가 중에 몸을 풀게 되는 일이 만연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30일의 산전휴가도 부여했다. 산모의 출산휴가는 총 130일이 된 셈이다. 세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영아와 산모를 위해 남편에게도 30일의 출산휴가를 부여했다. 적어도 출산휴가만큼은 오늘날의 제도보다 조선시대 공노비의 것이 더 나은 측면이 있는 것이다.

◎ 노비를 중용하다

세종이 등용한 인물 중 유교 문화권에서는 드문 과학자가 있다. 바로 장영실이다. 시간마다 종이 울리는 시계인 자격루,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기 위한 혼천의, 비가 내린 양을 계량하는 측우기 등 장영실의 발명품은 농경국가였던 조선시대에 말 그대로 혁신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관노에게 벼슬을 주겠다는 세종대왕의 결단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장영실은 기생의 아들, 즉 노비였던 것이다.

당시 양반들은 노비를 위한 출산휴가 제도를 도입하고 심지어 벼슬까지 준 세종에게 반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은 굴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일화에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이의 다양성을 존중하고자 했던 세종대왕의 마음 씀씀이를 짐작해볼 수 있다.

저 사람은 우리와 출신이 달라서, 저 사람은 나이가 어리니까 혹은 많으니까, 저 사람은 결혼을 해서, 혹은 안 해서... 자꾸 쪼개고 구분해서 차별하다 보면 장영실 같은 우수한 인재는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히고 만다. 공동체로서는 커다란 기회를 잃는 것이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해주지 않고 은연중에 구성원들을 차별하고 있다면, 세종대왕이 왜 오늘날까지도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