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기아차는 남미 진출을 위한 새로운 생산법인 입지로 멕시코를 선정했다. 그중에서도 부품회사들이 밀집해있고 가장 파격적인 투자 혜택을 제시한 누에보레온주에 공장을 설립,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기아차는 진출 당시부터 CSR의 방향성을 지역경제 발전으로 삼았다.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여 멕시코 시장에 안착 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우선 진출 국가의 법 제도를 준수하고 규제 대응을 위한 컨트롤타워를 설치했다. 의무사항인 환경 기준에 대한 감사를 자발적으로 신청해 정부 인증을 받고 정부 인사들을 초청해 현지 문화를 적용한 업무 프로세스 개선 정책들을 펼쳤다.

또한 2016년 한 해 동안 누에보레온주 페스케리아시에 공익용 차량을 기부하고 다양한 문화 이벤트, 재활용 캠페인, 시민대상 교육 훈련 등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낙후지역이었던 페스케리아 지역은 경제적으로 부흥했다. 기아차가 기여한 직접 고용 창출은 약 1만 9천명, 간접 고용은 6만 6천명에 이르렀다. 2015년 멕시코 통계청에 따르면 누에보레온주의 실업률은 2014년 말 5.8%에서 2015년 초 4.7%로 하락했으며, 지역 경찰청에 따르면, 기아차 진출 이후 일자리가 늘어나자 범죄율이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기아차는 기업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 포지셔닝하는 전략으로 CSR을 활용했다. 목표는 지역과 멕시코의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CSR 환경 분석을 실시했고, 그 결과 CSR 핵심영역을 교육과 보건으로 좁혔다. 멕시코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빈부격차 해소와 장기적 성장을 위한 인적자원 양성에 대한 사회적 투자 요구가 높았기때문이다. 멕시코는 지난 19년간 OECD 가입국가 중 학업성취도가 가장 낮았으며, 공공 의료보험 혜택은 전 국민의 46%에 불과했다. 때문에 빈부격차도 사회구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었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CSR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CSR은 주로 저소득층 가정에 현금이나 현물을 기부하는 형태였다. 기아차는 현금 기부보다는 장기적인 가치창출 동력인 인적자원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교육과 의료에 투자를 집중했다.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포르테 판매 대수와 연동해 대당 300페소의 기부금을 조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개안 수술을 지원했고 난치병 아동들을 대상으로 소원 들어주기 캠페인을 실시했다.

교육 부문의 경우 소외계층 어린이들이 다니는 교육 시설 개선을 위해 컴퓨터를 기부하고 도서관을 건립했다.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찾아가는 이동도서관’ 활동을 전개하고, 방학기간 중 방치되는 어린이들을 위해 매년 2주간 여름학교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또한 산학협력의 일환으로 매년 교수와 대학생들의 공장 방문을 지원하고, 기아차 매니저들이 ‘기아차 학기제’에 참여해 교수들과 공동으로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멕시코 유명 대학과의 산학협력을 통해서는 멕시코 사회의 미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기아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기아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할 뿐 아니라 우수인재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아차는 이렇게 형성된 긍정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두드러진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만족도조사 업체인 JDPower의 2019년 멕시코 소비자 평가에서 준중형차 포르테와 소형차 리오가 각 세그먼트내 1위를 차지했다. 시장점유율은 7위(2017년 기준)에서 현재 5위로 올랐다.

기아차는 2019년부터 조직문화 개선을 주요한 당면 과제로 삼고, 이를 위해 회사 내부 직원대상의 CSR을 강화하고 있다. 브랜딩 전략으로써의 외부적 CSR에 내부적 CSR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지속적인 성장 동력 확보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멕시코인들은 매사에 긍정적이지만 갈등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어 관료주의와 책임 회피 문화로 번질 가능성이 있었다. 기아차는 이러한 문화적 왜곡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크게 세 가지 전략의 CSR을 추진했다.

첫째, 직원 친화적 공장을 만드는 것이다. 작업공정을 작업자의 자세 개선과 작업피로를 경감하도록 설계하고 보건센터를 운영해 직원의 감기부터 어깨결림 등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직무 만족 중심의 경영 지원이다. 직무 만족과 동기부여를 위해 직원 참여를 늘리고 임직원 간의 소통을 활성화했다. 직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직원고충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급여, 복지 혜택 관련 문의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법률과 심리자문까지 제공하고 있다.

셋째, 교육 기회를 확대했다. 엑셀, 회계 등 직무 관련 교육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스킬, 의사결정, 마음챙김(Mindfulness) 등 개인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강좌도 개설해 직원들이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게 했다. 리더들을 위해 단계별 리더십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성장 욕구가 높은 팀 리더들에게는 고등학교 및 대학교 진학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내부고객인, 직원들의 조직 만족도가 상승했다. 2016년 기아차의 이직률은 4.6%였으나 2019년 4월 이직률은 0.63%였다. 2018년 누에보레온주 평균 이직률은 4.9%이며, 멕시코 완성체 업체 평균 이직률은 1.2%다. 중국과 인도에 이어 이직률이 높은 멕시코에서는 눈에 띄는 수치다. 저임금과 낮은 기술력 위주의 산업이 형성되면서 1원이라도 더 주는 곳으로 쉽게 이직하는 이직문화 때문이다. 그런데 기아차는 직원들을 인적자원으로 보고 장기적인 경력개발을 지원했다. 이것이 낮은 이직률로 이어진 것이다.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봉사활동 참여로 이어졌다. 2015년 불과 15명에 불과했던 자원봉사 참여자는 2019년 379명으로 늘어났다. 직원들 스스로가 기아차의 홍보대사가 되어 SNS에 기아차의 CSR 활동을 알렸고 이것을 현지 언론이 인용하면서 브랜드 가치 제고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높아진 브랜드 가치와 인지도는 앞서 언급한 경제적 성과 창출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기아차 사례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CSR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외부적 CSR을 통한 기업 브랜딩과 내부적 CSR을 통한 내외부 고객 만족도 고취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경제적 가치 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잘 이해한다면, 잠시 머물다 떠나는 기업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으로 인정받아 지속가능경영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