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국 경영자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에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기업 활동에 주주만이 아닌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포함시킨 것이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이를 ‘기업의 역할에 대한 원칙의 현대화’라고 표현했다. 주주 자본주의의 종식이자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출범이다. 실제로 단기적 수익성을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는 실업과 소득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기후위기를 초래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즉 지속가능경영의 추진을 위한 다양한 이니셔티브 및 글로벌 기준들을 내놓고 있다.
이번 보고서 리뷰에서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글로벌 표준들과 국내외 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적 책임의 의무화 동향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다양한 이니셔티브의 출현과 고도화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이윤 추구 방식이 달라져야 하고 또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존 주주 자본주의 방식으로는 돈을 벌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국제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제도화·법제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지금은 그 패러다임의 전환기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전통적으로 자발성에 의지해왔으나, 대략 6년 전부터는 법과 제도로 촉진하고자 하는 흐름이 강하게 형성되면서 일부는 이미 현실화돼있다.
UN PRI(책임투자원칙)과 MSCI*가 발표한 ‘책임투자에 대한 글로벌 가이드(Global Guide to Responsible Investment Regulation)에 따르면, 책임투자와 관련된 정책을 연기금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고려, 자산운용사의 스튜어드십 코드, 기업의 ESG 정보공개로 분류했을 때 이러한 규제의 절반 이상이 2013년~2016년 시기에 집중돼있다. 또 GDP 순위 상위 50개국 중 이란만 ESG 요소와 관련된 투자 정책이 없었다. KPMG, GRI, UNEP, 아프리카 기업지배구조센터가 공동으로 발간한 보고서 'Carrots & Sticks(당근과 채찍)'에서도 ESG 정보공개 의무 제도는 2013년 44개 나라 130개였으나 2016년에는 64개 나라 248개로 증가했다.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그에 상응하는 공공성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 Index.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이 발표하는 세계 주가지수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투자자들과 대형 펀드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G20의 기후 관련 정보공개 추진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를 의미하는 ESG 정보 공시 의무화는 이제 기본이 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은 종업원 500인 이상 기업의 ESG 정보 공시 의무를 2014년 법제화해 2018년부터 적용했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와 관련된 상세한 정보공개 의무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가 대표적이다. TCFD는 가후변화가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높아지면서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협의체인 금융안정위원회(FSB) 주도로 창설됐다. 그리고 2017년 TCFD는 기후변화 관련 기업의 4가지 핵심요소인 지배구조, 경영전략, 위험관리, 측정기준 및 목표설정에 대한 정보공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 권고안은 머지않아 의무화될 전망이다. 주요 국가의 금융감독기관들이 중심이 된 녹색금융네트워크, NGFS(Network of Greening Financial System)는 TCFD의 의무화를 더욱 빠르게 진척시킬 중요한 이니셔티브다. 2019년 4월 NGFS는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기관이 환경‧기후 이슈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 6개 행동 권고안을 발표했는데, 그중 첫 번째가 기후위기 리스크를 금융안정성 모니터링에 반영하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금융기관과 기업은 기후위기 시나리오에 따른 재무적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지배 구조, 전략, 리스크 관리, 지표 및 목표 등을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 프랑스는 TCFD 격인 에너지전환법을 제정해 연기금, 금융기관, 기업에 이를 의무화했다.
주요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증가
자본시장에서도 투자대상의 ESG를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가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연기금의 ESG 고려를 제도화하는 추세와 상관있다. 영국은 연금법을 제정해 2000년 7월 3일 시행했다. 연금펀드를 운용하는 모든 주체들이 투자자산의 선택·보유·매각과 관련해 사회적‧환경적‧윤리적 요소를 어느 정도 고려하고 있는지와, 의결권을 포함해 주주로서의 권리행사와 관련해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라고 의무화한 법이다. 비슷한 시기 독일, 스웨덴,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등도 영국과 유사한 법을 도입했다. 전 세계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2016년 22조 8900억 달러에서 2018년 30조 6830억 달러로 증가했고, 2014년 17조 6820억 달러와 비교하면 4년 사이에 73.5%나 늘었다. 일본은 2014년 7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18년 2조 1800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강화
스튜어드십 코드는 보험회사, 은행,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고객, 즉 가입자가 맡긴 돈을 자기 돈처럼 여기고 의결권 행사 등 주주 활동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자율지침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투자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무책임성이 드러나면서 등장한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주목할 점은 장기적 관점에서 ESG를 고려함으로써 포용적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대부분의 나라는 코드 이행 방식을 ‘원칙 준수, 미준수 시 사유 설명’인 자율적 준수 지침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스튜어드십 코드의 종주국인 영국은 지난해 이 방식을 '모든 원칙 적용, 그리고 설명'으로 규제 수위를 높였다. 또 상장기업 외의 기업(비상장기업)에도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기후변화를 포함한 ESG 통합을 강화했다. '모든 원칙 적용, 그리고 설명' 방식은 향후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방식의 대세가 될 전망이다.
국내 사회책임 제도화 동향
2016년 12월 우리나라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도화했다. 국민연금이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2019년 말 확정했기 때문에 코드의 적용이 더욱 본격화되고 확장될 전망이다. 2019년 11월 의결된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국내 주식 일부에만 적용되던 사회책임투자는 2020년부터 국내외 주식과 채권으로 확대된다. 또 국민연금 가치사슬의 일부인 위탁운용사의 선정과 평가도 ESG 관점에서 실행하게 된다.
지배구조 관련 공시 또한 의무화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거래소 규정 개정을 통해 2017년부터 시행해 오던 지배구조 관련 자율공시를 2019년부터 자산규모 2조 원 이상의 상장기업에 의무공시하도록 했다. 2021년에는 코스피의 모든 상장기업에 이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지속가능성,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시작
이처럼 국제사회는 지속가능경영의 성과 측정과 투자를 위한 새로운 기준들을 속속 준비해 수립해나가고 있다. 재무적 성과 중심이었던 자본시장에서도 그 움직임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지속가능성이 바야흐로 뉴노멀,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 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세계는 지금 전환의 시대, 그 문 앞에 서 있다. 고탄소 사회에서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 배타적 성장에서 포용적 성장으로의 전환,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 등이다. 기업은 이제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라는 낡은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전 세계 스마트한 경영자들은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다.
참고 자료 – 『기업이 돈을 벌고 쓰는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프레시안에서 발췌 후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