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그린 모빌리티’의 시대정신과 공정한 전환

“한국판 뉴딜”은 단지 코로나 위기 상황을 돌파하려는 정부의 국정과제나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한 경제정책만은 아니다. 경제적 혁신과 사회적 개혁을 결합하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체적으로 준비하고 사회경제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실행하려는 기획이다.

“한국판 뉴딜”의 두 축인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 펼쳐가는 혁신경제의 비전은 무엇보다 ‘그린 모빌리티’의 출현과 발전 속에서 가시적인 형상으로 다가온다. ‘그린 모빌리티’는 새로운 수송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영역 전반의 재편을 가속화하는 기술혁신의 실체이자 일상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해주는 아이콘인 것이다.



‘폭스바겐’ 스캔들과 ‘그린 모빌리티’
기후위기 앞에 던져진 인류에게 화석연료 기반 자동차 시대와 단절하고 친환경 저탄소 모빌리티를 개발하는 것은 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2025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유럽의 주요시장에서 퇴출될 내연기관 운송수단을 생산하는 기업들에게 ‘그린 모빌리티’는 목전에 닥친 정치적 압력이나 사회적 강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그린뉴딜’이 ‘인류세(Anthropocene)’1)의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는 시대정신으로 등장하고, 14%에 달하는 수송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을 해결하려는 운명적 기획을 ‘그린 모빌리티’가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격변을 관통하고 이질적인 체제를 뛰어넘어 한 세기 이상 독과점 지위를 구가했던 10여 개의 글로벌 완성차들은 강요된 도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부동의 선두주자였지만 2015년 배기가스 조작 사건으로 생존의 기로에 처한 ‘폭스바겐’이 로고를 교체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기업윤리의 회복을 결단하고, 디젤 내연기관의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향후 5년 동안 730억 유로를 투자하여 75종의 전기차 신모델 출시를 계획하는 것도 ‘그린 모빌리티’로의 전환을 실체화하는 사건이다. 배터리와 모터에서 동력변환 장치나 충전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모빌리티 내부 기관들을 모듈화하여 협력업체들이 수평적인 협업을 역동적으로 구성하는 ‘그린 모빌리티’ 가치 생태계가 글로벌 시장의 핵심으로 출현하고 있다.

이제 ‘그린 모빌리티’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질적인 경쟁자들에 맞서 전혀 다른 규칙으로 진행되는 낯선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R&D와 디자인의 핵심역량을 주도하는 혁신기업과 강소 부품 기업이 추구하는 밸류체인 전반의 디지털화와 탈탄소화는 모빌리티 시장 전체를 급진적으로 변형하고 있는 것이다.
  • ‘인류세(Anthropocene)’는 1만여 년 전에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는 지질학적 시대구분인 ‘충적세(Holocene)’에 비유하여 인간이 더 이상 지구 생태계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지구 환경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형하는 주체로 반전된 것을 강조하는 용어로, 환경파괴로 오존층이 사라지고 있음을 최초로 입증한 노벨화학상 수상자 크뤼천이 제시한 개념이다.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도전과 전략
샘플이미지 2030년 ‘그린 모빌리티’ 수요가 20%를 넘나들 글로벌 시장 전망에 맞추어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발걸음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완성차 산업을 주도하는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이 생산, 고용, 조세 영역에서 제조업의 약 12%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그린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후방산업과의 연관 효과를 새로이 설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테슬라’가 25%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독보적으로 유지하며 전기차에만 집중하거나 ‘토요타’가 수소연료전지차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달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수소차 그리고 전기차에 이르는 다양한 친환경 모빌리티 개발에 역량을 전개해왔다. 세계 최초로 양산형 수소전기차를 출시하고 승용 및 상용 수소차에 관한 선도적인 지위를 차지했으며, 전용 플랫폼과 부품을 공용화하여 가격과 성능에서 우위를 확보함으로써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3강(2020년 전반기, 5.8% 점유율)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전기차 기반 ‘모빌리티 플랫폼’을 구축하여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확보하고, 전기차 100만대 생산과 10%의 시장점유율을 목표로 ‘애플카’ 협력 생산을 포함한 다각적인 전략을 시도하였다.
‘그린 모빌리티’ 생태계와 ‘부산형 비전’의 공정한 전환
샘플이미지 ‘그린 모빌리티’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산업생태계의 생성은 한국 자동차산업 전반에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완성차 기업을 중심으로 1차, 2차 협력 기업 등으로 순차적인 동심원을 형성하며 수직관계로 성장해온 경직된 체계는 내장부품이 전장화되며 협력 기업사가 1/3 이상 축소되는 급격한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해 자동차 산업의 불황과 그린 모빌리티’로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위축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공공 부분과 민간 부분이 협동하여 혁신하려는 ‘부산형 상생 지역 일자리 비전’(20.2.6)이 발표되었다. 이는 한국적 ‘그린 모빌리티’ 생태계 구성에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중견 리딩 기업인 ‘코렌스’를 중심으로, 영세하고 경쟁력이 취약한 20여 개의 중소 업체들이 핵심부품인 차세대 전기차 파워트레인을 공동으로 연구·개발·생산하는 혁신 클러스트를 자율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그린 모빌리티 변화에 대처하는 새로운 모범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공적 투자와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실질적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민간 시장과의 새로운 협력모델을 마련하는 것은 지역산업구조의 재구성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국판 뉴딜”의 실행 전략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모빌리티 산업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여 수평적이고 상생적인 ‘그린 모빌리티’ 생태계를 실현하는 과정은 재벌중심의 경제 현실을 넘어 동반성장을 지향하는 공정한 전환에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모빌리티의 대체는 단순한 운송기기의 변형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린 모빌리티’는 디지털 기술의 과시적 선전물에서 생활공간의 새로운 건축자이자 사회 혁신의 촉매제로 스스로 생성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