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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7년
11월호

윤리연구소 - 시사톡톡

온·오프라인의 절대강자, 파괴적 혁신기업

미국 제조업 전성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것이 텅 빈 공장들이었다면, 유통의 새로운 구조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미국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허가 된 쇼핑몰이다. 이러한 유통업계 변화를 불러온 두 기업은 바로 아마존과 월마트이다.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최강자 월마트와 온라인 물류업계의 전설 아마존은 많은 소비자에게 가장 싼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그 과정에서 공급업체는 양대 기업의 압력을 받기도 하고, 많은 소매업체와 쇼핑몰은 문을 닫기도 한다. 최근 온·오프라인의 절대강자들은 상호 영역을 침범하는 전쟁을 시작했고 그 결과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에 관계없이 여러 유통업체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월마트가 유통업계를 장악한 사연

1962년 아칸소주 소도시 벤턴빌에서 출발한 월마트는 “매일매일 가장 저렴한 가격”이란 사업모토를 내걸었다. 1988년 월마트는 대형쇼핑센터를 열어 전자제품, 의류, 가구 등 거의 모든 소비상품을 망라해놓고 가족들의 쇼핑모임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동네 상점들이 잇달아 문 닫기 시작했다. 2016년 매출액은 약 4,860억 달러(약 586조 원)였고 매주 2억6천만 명의 고객이 1만1500개 점포에서 쇼핑했다. 또한, 미국 전체 식료품의 25%가 월마트에서 팔릴 정도로 월마트의 공급업체 흡입력은 대단하다. 많은 제조업체 매출의 14∽20% 정도를 월마트가 책임지고 소화한다. 이처럼 월마트의 거대한 유통물량은 유통권력을 자연스레 월마트의 손에 쥐어줬고 제품가격을 좌지우지하게 만들었다. 어느 유통업체건 이 유통권력에게 딴지를 거는 순간 판매대를 뺄 각오를 해야 한다.

상품을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려는 월마트는 1980년대부터 중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미국의 중국산 수입이 늘어났는데, 그 증가량의 15%가 월마트 차지였다.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낮아진 납품단가를 맞추기 위해 저임금국가로 생산라인을 빼기 시작했다. 대다수 브랜드 업체들이 해외에서 생산한 상품에 자체 로고만 붙여 판매한 것이다. 최근 해외로 빠져나갔던 제조업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지만 사라졌던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살아나지는 않고 있다. 제조공정이 완전 자동화되면서 일자리 회복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월마트가 효율성이란 미명 하에 시작한 납품단가 쥐어짜기는 온라인 유통의 황제 아마존이 오프라인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하면서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마존의 온·오프라인 문어발식 확장

월마트가 엄청난 수요를 무기로 제조업체들을 닦달했듯이, 아마존은 수익을 한 푼이라도 더 내기 위해 물류 전 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 아마존 창업자 베조스는 사업의 성공이 신속하고 믿을 수 있는 배송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전체 물류과정을 직접 관리하였다. 그리고 아마존은 새로운 차원의 판매경쟁시대를 열었다. 200만 개에 달하는 외부 판매업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소비자를 기다리며 경쟁한다. 아마존은 판매자들이 온라인 판매 플랫폼에서 결제 및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용을 통해 수익을 올린다. 지난해 온라인 소매 매출은 630억 달러로 시장점유율이 43%에 달한다.

최근 아마존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계속해 ‘아마존 생태계’라는 신조어까지 유행시키며 공정거래의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는 미국인의 소비생활이 아마존 서비스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현상을 빗댄 표현이다.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아마존이 진출하지 않은 사업을 찾기 힘들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져서 앞으로 독점에 따른 심각한 폐해가 불거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6월 아마존은 미국에 점포 460여 개를 둔 유기농 식료품 체인 홀푸드를 137억 달러에 전격 인수했다. 이것은 아마존 생태계를 식료품 유통업까지 넓힌 사건으로서 기존 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4000만 명이 넘는 아마존 ‘프라임 회원제’를 무기로 시장을 파고들면 기존 업계가 빠른 속도로 무너질 수 있다. 프라임 회원제는 연간 99달러만 내면 어떤 상품이든 이틀 내로 받아볼 수 있고, 영화·음악·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특히 미국 소득상위가구(연봉 11만2000달러)의 70% 이상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 고소득층 공략의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소비자 친화적인 양대 공룡이 가진 문제

월마트는 미국 매장 직원이 150만 명이나 되고 제조업이 사라지는 남부와 중서부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월마트는 최저임금 15달러 인상운동 단체들의 대표적인 공격대상이다. 최저임금 인상운동 단체들은 월마트가 세금으로 제공되는 사회복지 혜택을 믿고 직원들을 저임금으로 부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월마트가 지난해 최저임금을 13달러 선으로 인상한 이유도 질 낮은 서비스, 지저분한 화장실, 상품이 자주 비는 진열대 등에 고객 불만에 높아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직원 유인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한다.

아마존은 소매업계 종사자들에게는 거의 저승사자와 같다. 2012년 이후 백화점 일자리 25만 개가 사라졌다. 전통 있는 백화점 체인 메이시는 1만 개 일자리를 감축했고, 시어스는 260개 지점 폐쇄를 발표했다. 또한, 아동복 전문 업체 짐보리는 14억 달러 규모의 채무를 견디다 못해 총 1281개 점포 중 최대 450개를 폐쇄하는 감축안을 마련한 뒤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한 상태다. 그 밖에도 미국 내 300여 개 소매업체가 파산 위기에 몰려 있다. 한편, 아마존의 경우 고용환경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존의 자랑거리인 대단위 물류창고 게이트에는 “열심히 일해라”(Work hard, Have fun, Make history)로 시작되는 문구가 적혀있어 직장 문이 열릴 때마다 열심히 일하라는 다그침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199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소매업체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주에는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베조스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틈새시장이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고 온라인사업을 시작했고, 세금회피 노력의 일환으로 물류창고를 사람이 별로 없는 외지에 세워 판매세(sales tax)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기도 했다. 규제당국의 압력으로 판매세를 내기 전까지 세금회피 전략은 그 힘을 충분히 발휘했다. 또한, 아마존은 세율이 낮은 국가로 이익을 돌리는 전략도 적극적이었고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오프라인 서점들이 단결하여 “우리는 세금을 낸다(We pay our taxes!)”는 구호로 아마존에 저항하기도 했다.

파괴적 혁신기업이 생각해야 할 윤리경영 이슈

아마존은 relentless.com이라는 스타트업 도메인을 가지고 있다. 릴렌트리스는 ‘무자비한’, ‘가차 없는’이란 뜻으로 아마존이 기존 동종 업계를 대하는 진면목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슘페터 식으로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기업이 등장한다지만 아마존은 사실 극도의 저가 전략(low or no margin)을 통해 기존 사업자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으로 오히려 유명하다. 아마존에게 동종업계의 생태계나 최근 윤리경영 트렌드인 상생경영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온·오프라인 유통의 양대 산맥 아마존이나 월마트의 경우에도 제품 가격을 낮추려면 당연히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따라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이들 기업은 무인 자동화 시스템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 경제는 균형을 잃고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노동시장은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혁신기업은 기존 업계를 악의적으로 파괴하지 않아도 결국 기존사업의 이해관계자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혁신기업에 비해 기존기업이 약자라고 순간적인 동정을 살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 사회적 해법을 찾아 상생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또한 혁신기업을 혁신이라는 면만 강조하며 우대하는 것도 사회적 충격을 감안하면 파괴적인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혁신을 얼마나 큰 갈등 없이 이루어낼 수 있느냐가 사회발전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아마존은 점포 내에 설치된 센서와 비디오카메라 등을 이용해 계산대를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계산되는 미래형 점포 ‘아마존고’(Amazon GO)’의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기업에게 바라는 윤리경영의 덕목이 제발 1명이라도 더 고용하라는 주문일지 모른다. 윤리경영 이슈가 부패방지라는 소극적 덕목에서 고용문제 해결이라는 적극적 덕목으로 확대될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참고
  • “노동자 착취도 우리가 선도한다!”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