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기업시민, 기업도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창백한 푸른 점’이라 표현했다.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는 보잘 것 없는 점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지구는 특별하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다른 곳은 없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더 배려하고, 유일한 삶의 터전인 지구를 아끼고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다. 기업도 예외일 수는 없다.

기업시민이란 기업도 일반 시민과 같이 지역사회 등 공동체의 구성원이며 그에 따른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는 개념이다.
이번 사례돋보기에서는 질병ᆞ빈곤 등 인류의 보편적 문제, 기후변화ᆞ물 보존 등 지구 환경문제, 고용ᆞ경제 등 경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 최대 공동 목표인 UN 지속가능발전목표의 이행을 위해 기업시민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국내외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류의 보편적 문제 - 질병 치료에 기여하다
샘플이미지 질병은 의료만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기아, 영양실조 등 빈곤에서 오는 질병의 치료방법은 약보다도 균형 잡힌 음식이다. 2011년 펩시는 인도에서 시장조사를 하던 중 일부 지역의 12~16세 소녀 70%가 어지러움 증상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철분 부족 때문이었다. 철분이 풍부한 식단은 인도에서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펩시는 철분을 보강한 비스킷을 만들어 한 봉지에 2루피, 고작 4센트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CJ의 ‘햇반’ 라인 중 하나인 저단백밥도 비슷한 사례다. 단백질 함유량을 일반 햇반의 10% 수준으로 낮춘 ‘햇반 저단백밥’은 페닐케톤뇨증(이하 PKU) 등 선천성 대사질환을 앓는 이들을 위한 상품이다. PKU는 단백질 대사에 필요한 페닐알라닌이 분해되지 않고 체내에 쌓이는 선천성 희귀 질환이다. 신생아 6만 명당 한 명이 이 질환을 갖고 태어나며, 정신지체나 신경학적 이상이 생길 수 있어 평생 페닐알라닌이 포함되지 않은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 PKU 환자 140여 명을 포함해 저단백식품을 먹어야하는 대사질환자들은 국내에 200여 명으로 파악된다. 지난 10년간 생산된 저단백밥은 약 150만 개에 이른다. 환우 200명의 식탁에 ‘햇반 저단백밥’이 하루 두 끼 이상 꾸준히 오른 셈이다. CJ는 해당 질환을 앓는 자녀를 둔 직원의 건의로 2009년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총 8억 원의 투자와 7개월 간의 연구 끝에 독자적인 기술과 제조 시설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저단백밥은 일반 햇반과 비교해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은 10배 이상이 걸린다. 기업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사의 핵심 역량을 활용해 질병을 가진 이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기여한 사례다.
지구 환경문제 -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다
샘플이미지 화장품 용기는 다양하고 복잡한 재질로 만들어진다. 기능적인 측면과 심미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이 있는 상품인 만큼 제조부터 폐기까지 수명도 짧고 재활용에 적합하지 않는 소재도 많다.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률도 높다. 최근 환경문제가 고조되고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화장품 업계에도 지속가능한 패키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은 지난 2007년부터 폐기물 배출량을 줄이고 탄소발자국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패키징을 실천해오고 있다.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존중하고(Respect), 원료 소요량을 줄이고(Reduce), 기존의 소재에 있어서는, 재활용과 생분해가 가능한 대안으로 대체한다는 (Replace) 의미의 ‘3Rs’ 자체 규정도 채택해 지키고 있다. 2019년 프랑스 화장품 용기업체와 협력해 종이 튜브용기 개발을 발표하고, 2020년 5월에는 업계 최초로 종이 튜브용기를 사용한 썬크림 제품을 출시했다. 정확히는 64.8%의 종이와 플라스틱 성분 35.2%가 혼합된 튜브용기다. 플라스틱 사용이 불가피한 뚜껑 부분은 이전 제품보다 부피를 줄여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시켰다. 동일 제품과 비교하면 총 45%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 생산 결과다. 로레알은 2025년까지 자사 생산 제품 패키징의 100%를 재활용 플라스틱, 리필용기, 퇴비화가 가능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8년 기준 3.59톤에 달한다. 이 가운데 79%가 매립되거나 방치된다.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한 자릿수로, 고작 9%에 불과하다. 뷰티업계 선도 기업의 노력이 플라스틱 사용량 절감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경제 사회문제 - 지역경제를 부흥시키다
샘플이미지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 중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는 곧 생계 수단이며 자아실현의 장이자 소통의 커뮤니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사회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기업 또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주민들의 신뢰를 받아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한다.
글로벌 자동차기업 도요타의 본사는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있다. 도요타시의 본래 이름은 ‘고로모’였다. 지난 1959년 도요타 본사를 유치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거쳐 ‘도요타’로 지역명을 개명한 것이다. 기업명이 도시명으로 자리 잡은 것은 전 세계 도요타시가 유일하다. 현재는 도시 인구 40만 명의 절반 이상이 도요타 관련자일 정도로 관계가 긴밀하다. 도요타 역시 회사 산재 전문 병원을 일반 시민에 개방하고 봉사팀을 조직해 지역 산림관림 활동과 더불어 자동차 박물관 설립 등 지역 관광산업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도요타시와 도요타가 쌓아온 신뢰는 위기 상황에서 더 빛을 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도요타는 5조 원이 넘는 적자에 시달렸다. 기업의 존폐 위기였다. 도요타시 역시 위기였다. 전체 세수의 30%를 차지하던 도요타가 세금을 전혀 내지 못했던 것이다. 지역사회와 기업은 서로를 외면하지 않았다. 도요타는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다. 다만 공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의 수를 크게 줄였다. 이에 도요타시는 공채를 발행해 해고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거나 기업, 시 관련 단체에 취직시켰다. 이후 도요타가 정상화되자 해당 외국인 노동자들은 다시 도요타로 돌아갔다. 재정이 궁핍해지는 어려운 국면에 정부와 기업, 시민이 함께 고통을 분담하며 미래를 기약한 것이다.
기업도 시민이다
신뢰는 대표적인 사회적 자본이다. 신뢰도가 높은 사회는 감시와 통제 비용을 줄여 보다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할 수 있다. 그래서 신뢰 범위는 기업 조직, 나아가 각국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까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살기 좋은 사회와 부자가 많은 사회는 등치하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신뢰자본을 쌓아가는 것은 사회를 이루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주체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기업은 정부 이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기업이 시민으로서 공동체에 기여하고 상생할 때, 공동체 또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약속하는 비즈니스의 터전이 될 것이다.


자세한 참고자료 리스트는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웹진 내 PDF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