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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8년
02월호


윤리연구소 - 인사이트+

갓뚜기가 된 오뚜기, 오뚜기의 성장 비결

작년 7월, 때 아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기업이 있다. 바로 오뚜기다. 청와대가 주최한 국내 재계 14대 그룹 기업인 초청 간담회에 재계 순위 100위 권 밖인 오뚜기도 참석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가 오뚜기를 특별 초청한 이면에는 오뚜기를 갓(God)뚜기라 불린 SNS 여론이 있었다. ‘진라면’, ‘3분 카레’ 등으로 대표되는 오뚜기는 우리 국민들에게 친숙하고 오래된 딱히 특별할 게 없는 기업이기도 하다. 이런 오뚜기가 어떻게 갓뚜기가 된 것일까?

모든 직무가 중요한 기업

과자, 라면, 고기, 반찬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고객들에게 권해 구매를 유도하는 시식 직원들 대부분은 경력이 단절된 중년여성이자 비정규직이다. 기업 입장에서 고도의 업무숙련도가 요구되지 않는 현장의 홍보 사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게 부담스러운 현실이다. 그러나 오뚜기는 달랐다.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지 말라”


故 함태호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2016년 오뚜기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중이 전체 인력의 1%에 불과하다. 오뚜기 관계자는 이 1%의 비정규직도 시간제 주부 사원이라고 설명했다. 경력단절 여성을 파트타임 형태로 채용해, 원하는 시간 동안 근무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오뚜기의 채용정책은 명확하다.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한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직책은 없다‘는 것이다.

정직한 상속세 납부

외국 언론들은 한국형 기업 형태를 가리켜 ‘재벌(Jaebul)’이라고 표기한다. 국내 대기업들 특유의 족벌 경영 체제를 표현하기 위한 마땅한 단어가 없는 것이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우리나라의 고속 성장을 이끈 재벌 체제는 여러 부작용도 내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편법 상속 문제다. 법적으로야 별 문제가 없다고 해도 일반 소비자 즉 국민의 시선에는 곱게 비칠 리가 없다.

상속/증여세 법에 따라 오뚜기는 1,500억 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함영준 회장은 5년에 걸쳐 성실히 분할 납부할 것을 약속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천억 원이 훌쩍 넘어가는 엄청난 상속세를 선뜻 납부하겠다는 2세 경영자는 보기 드물었던 게 사실이다.

협력업체들이 더 칭찬하는 기업

국내 여느 대기업들이 그렇듯, 오뚜기 역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제품들이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오뚜기의 협력업체들은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높고 계속해서 최신의 기계들이 도입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오뚜기의 특별한 경영철학이 있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납품 대금만큼은 제 때, 제 값으로 지급하자"
원청업체인 오뚜기가 납품대금을 성실히 치러준 덕분에 협력업체들은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근로 환경도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기업은 저마다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며 고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로의 역할에 정당한 값을 지불한다면, 낙수효과, 지속가능경영, 초과이익공유 같은 인위적인 이익의 재분배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끊임없는 사회공헌

2016년 9월, 故 함태호 회장의 장례식장에는 유독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오뚜기의 후원으로 심장 수술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이었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4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새 심장을 기증받았다. 또한, 석봉토스트가 노숙자들에게 하루 100개의 토스트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는 것을 알게 된 故 함태호 회장은 이후 10년 간 토스트에 들어가는 모든 소스를 무상으로 지원해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석봉토스트 창업주인 김석봉 씨가 본인의 자서전을 쓰면서 알려졌는데, 오뚜기의 숨겨진 미담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갓뚜기’가 보여준 윤리경영의 경쟁력

예산으로만 따지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오뚜기보다 훨씬 더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뚜기가 갓뚜기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성실하게 실천해 온 윤리경영 때문이다. 기업윤리는 때로 현실과 괴리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노력하는 기업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오뚜기의 미담을 정리한 글을 여러 커뮤니티로 퍼 날랐고, SNS를 중심으로 전개된 구매운동의 성과는 2017년 라면시장 점유율 5% 상승을 일으켰다. ‘착한 기업’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소비자의 실력행사가 현실에서 빛을 본 것이다. 뉴 노멀 시대의 소비자들은 적은 수입과 불안한 고용 기조에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윤리경영이야말로 뉴 노멀 시대를 꿰뚫는 경쟁력인 것이다.


참고



역사속의 거상, 김만덕
오늘날에도 기업 경영은 대부분 남성이 주도하고 있다. 여풍이 거세다는 최근에도 드문 여성 CEO가 조선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은 사뭇 놀라운 일이다. 바로 <거상, 김만덕>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한 김만덕이다.
제주의 빛, 김만덕

남존여비 사상이 서슬 퍼렇던 조선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나, 천대받던 기녀의 신분이었다는 것과, 당시 무시당했던 제주도 출신이라는 것까지 만덕은 삼중고를 극복한 뛰어난 경영자였다. 이러한 만덕이 ‘제주의 빛’이라 불리게 된 것은 극적인 성공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 1793년, 제주에는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 세 고을에서만 6백여 명이 굶어서 아사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이대로라면 제주도민들은 꼼짝 없이 섬 안에 갇혀 목숨을 잃게 될 위기였다. 이때 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을 출연해 육지로부터 쌀 500여 석을 사와 450여 석을 구휼미로 내놓았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정조는 제주도민은 섬을 떠나지 못한다는 규칙을 깨고, 한양의 궁궐과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다는 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만덕을 의녀로 삼아 임금을 알현할 수 있는 자격까지 부여해 주었다. 만덕의 선행은 제주도민들에게 커다란 구원이었던 것이다.

거상 김만덕의 나눔을 통한 상생

조선 시대의 상인은 오늘날의 경영자와 같다. 태생적 한계와 외적인 난관을 극복하고 큰 부를 축적하는 것은 모든 기업가가 꿈꾸는 일이다. 하지만 경영자는 동시에 리더이기도 하다. 사회 구성원들과의 가치 교환으로 부를 축적한 만큼, 사회가 어려워졌을 때 돕는 것이 진정한 상생이자, 기업가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속의 김만덕은 새해를 맞아 여러 가지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을 기업들이 되짚어 봄직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