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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7년
10월호

사례돋보기

청탁금지법이 만든 변화

한 판사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변호사들이 판사에게 떡값을 돌리고 식사비를 내주는 모습이 굉장히 이상하게 보였다. 시간이 흘러 대법관이 되고, 한 공공기관의 장이 되어서도 그녀는 그 이상한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관행, 관례란 이름으로 접대를 당연시하고 금품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은 다음 편의를 봐주는 모습. 그녀는 이 부당한 모습을 정당한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고, 마침내 법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청탁금지법. 수년에 걸쳐 많은 토론과 논의 끝에 청탁금지법은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되었고, 어느새 시행 1주년을 넘어섰다. 과연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이번 사례

부패행위를 처벌하다_부정청탁

청탁금지법의 핵심은 역시 ‘부정청탁’과 ‘금품등 수수의 금지’이다. 청탁금지법 시행이전에는 청탁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대가성 금품이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했다. 그러나 청탁금지법에서는 금품의 제공 여부, 부정청탁의 수행여부에 관계없이 청탁 사실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시행전
고위 임원의 특혜
임원으로부터 5%의 계약금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하란 지시

2011년, 한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매각했다. 몇몇 업체가 이 아파트를 구매하고자 했고, 업체 선정을 맡은 담당자는 고민 끝에 10%의 계약금을 제시한 기업을 선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해당 공공기관의 고위 임원으로부터 5%의 계약금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하란 지시가 내려왔다. 담당자는 규정 위반을 이유로 임원의 지시를 거부하였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대기발령을 시키겠다’는 압박이었다. 결국 담당자는 5%의 계약금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적발한 감사원은 부당한 지시라며 상급기관에 인사 시 참고할 것을 요청했으나, 해당 고위 임원은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칙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라고 지시했을 뿐 인사 조치를 운운한 적은 없었다”고 말하며, “해당 내용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종결되었다”고 해명했다.

시행후
소방서장의 질문
건축감리사의 소방시설공사업법 위반을 묵인하라고 압박한 소방서장

2016년 11월 1일, 오후 5시 반쯤 한 사람이 소방서장을 찾아왔다. 미리 매제에게 연락을 받았던 소방서장은 흔쾌히 그를 서장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소방서장을 찾아온 사람은 A사의 전무이사. 그가 속한 A사는 2016년 10월 중순부터 B사의 소방공사 감리를 맡고 있는데, 자신의 회사가 감리를 맡기 전인 2016년 9월 B사가 공사감리자 없이 자동화탐지설비 소방시설공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방서에서 진행한 소방공사현장 등에 대한 표본점검을 통해 소방서에서도 B사의 소방시설공사업법 위반을 확인한 상황이었다. 10분가량의 대화를 마친 소방서장은 서장실을 나와 관련 업무를 하는 직원을 불러 물었다.

“봐줄 수 있지?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지?” B사의 위반행위를 묵인하라는 취지가 엿보이는 소방서장의 지시에 직원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소방서장의 묵인 지시를 받은 직원의 신고로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조사결과, 소방서장은 해당 직원뿐 아니라 다른 팀장에게도 B사의 소방시설공사 준공필증 신청을 취하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법원은 소방서장의 부당한 지시가 청탁금지법의 부정청탁의 금지를 위반한다고 판단하여 1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였다.

부패행위를 처벌하다_금품수수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에도 부당한 금품의 수수는 뇌물죄 등으로 처벌해왔다. 다만, 뇌물은 ‘직무의 대가로서의 부당한 이익’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의 여부에 따라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반면 청탁금지법은 대가성 여부와 무관하게 금품수수가 인정되며, 직무관련성에 관계없이 공직자의 고액 수수를 금지하고 있다.

시행전
가해자의 후배가 준 금품

2008년, 폭행사건의 가해자로 입건된 사람의 후배에게 6번에 걸쳐 3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경찰관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경찰관이 가해자의 후배가 제공한 금품 향응의 출처가 폭행사건의 가해자임을 쉽사리 알 수 없었을 것이며, 폭행사건의 청탁 명목으로 향응과 금품을 받을 생각이었다면 후배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해당 경찰관의 금품 향응 수수는 폭행사건과 관련한 청탁 명목으로 이루어졌음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보아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시행후
돈을 남기고 간 취객

2016년 9월 20일 새벽, 한 편의점에서 취객이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출동한 경찰은 취객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피의자 대기실로 데려왔다. 그런데 너무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취객은 그대로 바지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경찰들은 이를 수습하고, 난동을 피우는 취객을 일단 집으로 돌려보냈다.

시간이 흘러 10월 15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렸던 피의자는 다시 경찰서에 와서 심문을 받고 조서를 작성했다. 일전의 사건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피의자는 담당 경위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자신의 명함과 함께 100만 원이 든 흰 봉투를 경위의 책상 위에 올려두고 경찰서를 떠났다. 자리로 돌아온 경위는 명함과 돈 봉투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이를 신고했다.

법원은 피의자가 청탁금지법의 금품등 수수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피의자로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고도의 공정성과 청렴성을 요하는 수사 담당 경찰관에게 상당한 액수의 금품을 제공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금품수수의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었고 담당 경찰관이 곧바로 신고하여 경찰관에게 금품이 귀속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여 그에게는 금품등 가액의 3배의 과태료가 부과되었다.

청탁금지법이 만든 문화

청탁금지법은 국민들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일상에서, 다양한 기관의 조사결과, 이색적인 행사에서도 이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실속 있는 명절선물

청탁금지법이 시행되자 유통업계는 5만 원을 초과하는 명절선물이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에 맞춰 유통업계는 고가의 선물세트 대신 가성비가 뛰어난 실속형 선물세트의 비중을 늘렸다. 제품의 구성을 조정하거나 할인행사를 통해 5만 원이 넘지 않는 상품을 준비하여 법의 제한 없이 선물세트를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통계가 보여주는 변화
제약사 상반기 총 접대비 변화는 2016년 64억원에서 2017년 52억원, 가구 간 이전 지출 변화는 2015년 184.3천원, 2016년 170.9천원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고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어떤 것들이 변화할지는 계속 초미의 관심사였다. 통계청의 ‘2016년 4분기 및 연간 가계동향’을 통해서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가구 간 이전 지출(부모에게 보내는 돈도 포함되지만 일반적으로 경조사비의 비중이 큰 편)이 작년에 비해 7.2% 감소하여 경조사비의 비중이 줄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국내 상장 제약사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반기보고서를 통해서는 제약업계의 접대비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렴을 위한 행사
학원에서 발생 할 수 있는 뇌물,청탁문제를 방지 하기 위해 청탁금지법 교육과 이색적인 행사를 진행했다

기업과 공직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 생각했던 뇌물, 청탁 등의 문제가 학교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도 성립될 수 있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고 청탁금지법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청탁금지법 교육과 함께 이색적인 행사들이 이뤄졌다. 충북대학교에서는 청렴 공모전을 진행해 학생들에게 청탁금지법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T 보험사의 경우 바뀐 스승의 날 문화에 혼란스러워하는 학생과 선생님들을 위해 학급에서의 추억을 응모하면 우수작을 뽑아 간식과 카네이션 등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 아직도 법의 완화와 강화에 대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부정행위에 대한 경계가 강해졌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청탁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청렴 수준에 맞춰 계속 변화해 가야할 것이다.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청렴 대한민국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사회의 신뢰도가 높아져 청탁금지법이 완화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참고자료
  •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 김영란, 김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