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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7년
10월호

윤리연구소 - 시사톡톡

리보(LIBOR) 스캔들로 돌아보는 금융기관의 윤리경영

2013년 동양그룹 사태는 경영실적이 악화되어 상환능력이 없으면서도 1조 3,032억 원의 기업어음(CP)·회사채를 발행한 뒤 9,942억 원을 지급불능 처리해 4만여 명의 개인투자자를 벼랑 끝에 내몬 사건이다. 금융기관을 소유한 기업이 부실한 정보를 숨긴 채 고금리라는 미끼상품으로 금융시장과 금융소비자를 완전히 우롱한 것이다. 당시 여러 증언에 따르면 금융상품 판매과정이 불완전해서 개인투자자들이 투자대상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투자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미 부실해진 회사가 채무변제의 능력이 없으면서도 계열 금융회사를 통해 채무를 발생시킴으로써 사회질서를 해치고 선량한 채무자의 재산권을 침해한 “사기채무”는 지탄받아 마땅한 위법행위의 전형적 모습이다. 금융기관의 사기나 기만행위가 한국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올해 4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외화 시세조작 혐의로 독일 도이체방크에 1억5,660만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도이체방크는 외환 트레이더들이 다른 은행 트레이더들과 온라인을 통해 달러화 등의 시세조작을 공모한 사실을 포착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준법을 위한 도이체방크의 관리감독 프로그램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 연준은 감독과 통제 강화라는 시정 명령도 같이 내렸다. 2015년 연준은 이미 외화 시세조작에 가담한 다른 6개 은행에 대해서도 18억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그중 영국의 바클레이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으나 2012년 리보금리 조작을 비롯한 각종 파문에 시달려왔다. 해외 금융기관의 비윤리적 사례를 리보 스캔들을 통해 짚어보도록 하겠다.

리보(LIBOR) 스캔들로 돌아보는 금융기관의 윤리경영
리보(LIBOR) 스캔들은 어떤 의미인가?

2012년 7월 금융업계 외부에서 그 용어조차 생소한 ‘리보’라는 스캔들 기사들이 세계 각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 핵심은 영국, 미국,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 파급력이 큰 주요 은행들이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 사건의 재구성을 위해서는 리보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런던은행간금리(London Inter-Bank Offered Rate)의 약자인 LIBOR는 1986년 완성된 제도이다. 당시 영국은행연합 회(BBA)는 시중 우량은행들이 평일에 다른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릴 경우 자금조달 금리수준을 보고하도록 했다. 그중 상·하위 25%를 제외한 중간치 50%를 평균한 리보금리가 발표됐고, 매일 변동했다. 리보는 모기지 대출, 파생상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수백 조 달러에 달하는 금융거래의 기준금리였다. 이런 금리를 만든 취지는 은행이 경제 상황을 낙관할 경우 금리는 낮아질 것이며, 반대로 경제 상황을 비관적으로 본다면 금리가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은행들이 큰맘 먹고 리보금리를 '조작'해 수백 조 달러의 대출이나 파생상품 거래를 한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이윤을 챙길 수 있다. 반면, 주택대출금을 갚는 사람들과 학자금대출을 상환하는 학생 등 일반 서민들은 리보금리의 조작으로 원래 갚아야 할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은행들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막대한 피해를 바탕으로 거대한 이윤을 챙겨왔다는 얘기가 된다.

리보 스캔들의 경제적 피해와 조작 이유

2008년 5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내부고발로 리보금리조작 수사에 처음으로 착수했다. 2010년 CFTC는 금리조작의 강력한 증거를 확보하여 영국 금융당국에 협조를 요청했고, 이후 사건수사가 영미의 공조 하에 진행됐다. 2012년 영국과 스위스, 미국 금융당국은 라보은행과 UBS, 바클레이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등 10여 개 은행이 수년간 담합해 리보금리를 낮춘 사실이 조사에서 드러나자 100억 달러 이상의 벌금을 부과했다. 한편, 리보 금리 조작 사건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막대했다. 2012년 7월 당시 금융피해액이 약 170억 달러에 달했고, 리보조작으로 과도하게 책정된 부동산담보대출이자 손해액만 해도 약 90억 달러에 달했다.

리보조작의 이유는 금융위기 시기에 은행들은 자체 조달 금리를 낮게 보고하여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실제로는 기만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트레이더들이 파생금융상품으로 돈을 벌 수 있게 금리신고가 부당하게 이루어졌다. 금리조작으로 투자자도 속이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은행들이 리보금리를 낮게 조작하면 리보를 기준으로 산정된 이자를 받는 채권 투자자나 금리가 올라갈 경우 이득을 보는 파생상품을 보유한 투자자들 모두 손실을 본다. 반대로 은행들은 리보를 조작한 뒤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하여 부당이익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금융위기 상황에서 바클레이스와 같은 은행은 자사의 신용등급을 위해 리보를 낮게 조작한 것이다. 일반기업으로 치면 기업이 멀쩡하다고 선전하기 위해 회사채를 낮은 금리에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사기를 친 셈이다. 이것은 자신의 조달 금리를 스스로 보고하는 금융기관의 특권을 악용할 수 있는 리보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것 때문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허브 런던발 금융시장 신뢰위기

영국 런던은 유럽통합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금융허브로서 독자적 번영을 누리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금융업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곳이다. 글로벌 상위 15개 은행이 런던에서 고용하고 있는 일자리만 7만 개에 이른다. 런던이 영국에서 나 홀로 발전이 가능했던 것도 금융업 효과였다. 런던은 가장 큰 외환시장이자 금 거래 시장이며, 온갖 장외파생상품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브렉시트로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는 것이 런던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게 사실이다. 런던 금융업 종사자들의 84%가 유럽연합 잔류를 희망한 것도 그들의 존재증명이 유럽 속의 런던 금융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안긴 리보 스캔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런던의 허브적 위상을 떨어뜨린 사건임이 틀림없다.

또한 리보금리조작 파문에 영란은행(BOE)을 비롯해 영국 정부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금융업 중심지인 영국 런던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폴 터커(Paul Tucker) 영란은행 부총재가 바클레이스 최고경영자(CEO)에게 전화해서 리보금리를 낮추어 제시하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리보 스캔들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클레이스 등 몇몇 은행에게 입은 직접적인 금융피해 외에 금융시장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시장금리의 불신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금융기관의 윤리경영
금융기관의 윤리경영

리보금리는 전혀 신뢰할 만하거나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영국 시중은행의 편의에 따라 어림짐작으로 결정됐다. 조작 스캔들로 얼룩졌던 리보가 4년 뒤 사라질 조짐이 보인다. 영국 금융감독청(FCA) 베일리 청장은 리보가 적절성을 잃어 2021년 말까지 “더 신뢰할만한 대안” 제도로 교체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의 대안기준금리위원회(ARRC)도 환매조건부채권 레포(repo)금리를 리보의 대안으로 권고한 바 있다. 리보의 대안 마련과 함께 금융기관의 윤리경영 소홀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높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주요 MBA 과정에서 윤리교육을 강화한 것은 금융기관 임직원은 누구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금융 스캔들을 피하려면 금융규제 당국의 철저한 감시·감독체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시중 금융기관의 자율권에 의존하는 방식이 가진 한계를 리보스캔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금융내부의 비리는 내부자의 고발이나 증언 없이는 중대과실이 밝혀지기 어려우므로 금융기관의 내부고발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과도한 금융당국 규제가 금융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시장개입은 뚜렷한 명분과 원칙 속에 더욱 윤리적이고 투명한 금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투자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주주활동에 나서 경영위험을 피하고 기업성장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2010년 영국에서 기관투자가들의 기업에 대한 의사결정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시작한 의결권 행사지침인 스튜어드십코드를 우리도 적극 도입해야 할 것이다.


참고